[주일예배] 갈라디아서 5:22~23_성령의 열매. 자비_배성은 목사
토론토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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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갈라디아서 5:22~23_성령의 열매. 자비_배성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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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뉴욕의 한 공항에 이름이 된 라과디아 판사의 유명한 ‘판결’이 있다. 굶주리는 손주를 위해서 빵을 훔쳤던 ‘장발장 할머니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에서 그는 "법은 예외가 없으므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벌금 $10달러 내거나, 돈이 없다면 열흘 동안 감옥에 갇히셔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주머니에서 $10을 꺼내서 모자에 넣으며, 법정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이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50센트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그 벌금 사유는 이웃이 굶어서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비정한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이 이야기가 유명해진 것이다.
저는 오늘 ‘성령의 열매’ ‘자비’에 대해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자비’에 대해서 이보다 더 좋은 예시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자비’가 무엇인가? 첫째는 공의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자비는 공의를 무시하거나 무법천지로 만드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공의’가 없는 ‘자비’는 아무 의미가 없다.
눅15장에 보면 예수님의 ‘탕자 비유’를 보면 탕자가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은 동생을 받아주는 아버지에게 항의한다. 그런데 그 형의 말 중에 틀린 것이 있는가? 없다. 너무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형의 문제는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보여준 ‘자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의’라는 것은 ‘자비’가 있어야만 그 정당성을 더 강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죄를 반드시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신명기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의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로우시도다.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자비로운 하나님’을 먼저 바라기 전에 ‘공의로운 하나님’에 대해서 먼저 깊이 순종할 때 우리가 받은 ‘자비’가... 더욱 빛이 나는 줄 기억하시고, 먼저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할 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자비’는 둘째로 ‘대속(Substitution)’의 원리가 있는 것이다.
대속이라는 것은 공의 앞에 받아야 ‘죄의 댓가’를 누군가 대신 받는 것이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모두 ‘지옥’의 판결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비는 그 공의의 판결은 불변하지만 대신에 우리의 ‘죄의 댓가’를 지도록 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결정체이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성도여러분! ‘자비’는... 자격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는... 구체적인 '희생'이 따르는 것이라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조건없는 자비, 구원’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자비받은 자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자비’는 세째로 연대 책임과 이웃 사랑의 사명이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우리들이 정작 우리 앞에 보이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을 죄로 여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비유의 끝에37절 하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자비’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자비’를 갚아야 하는 ‘연대 책임’이 있는 자들임을 말씀하셨다.
성도여러분! ‘자비’를 갚는 것은 물질만이 아니다.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도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받은 자비하심을 조금씩 갚아간다는 마음으로 우리 삶이 자비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찰스 디킨스’의 ‘A Christmas Carol’라는 소설과 그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을 우리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할까? 그것은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차가웠고, 거리의 어려운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법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지만 ‘자비’를 베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를 나쁜 사람이었다고 그리고 있다.
그러면 우리들이 그 소설 속의 ‘스크루지 영감’과 뭐가 다를까? 없다. 우리도 ‘법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도 ‘자비’를 베풀지 않고 산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스크루지 영감’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성도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자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자격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은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자비’이다. 그렇기 때문에 눅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말씀처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삶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 향기나는 ‘자비’의 열매가 가득한... 우리 인생과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