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갈라디아서 5:22~23_성령의 열매. 화평_배성은 목사
토론토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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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갈라디아서 5:22~23_성령의 열매. 화평_배성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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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요즘 무설탕 음료, 무설탕 과자 등이 아주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제품들은 분명 우리 입에 단맛은 나지만 사실은 뇌를 속여서 단맛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가짜 단맛이다. 그래서 이런 제품들이 설탕을 넣은 것들보다 더 몸에 해롭다는 연구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평화롭게 만들고, 위로가 되게 만드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 위로, 화평’를 느끼게 되는 많은 것들 중에는 알고보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더 망치고, 결국 병들게 하는 가짜 평화, 평안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중독이 주는 평안이 있다. 술, 쇼핑, SNS같은 것들은 쉽게 중독된다. 그러면 일시적인 평안을 느낄 수는 있지만 모두 가짜 평안이다. 또한 세상에서의 성공에 주는 평안이 있다. 또 현실에서 도피하면 얻을 수 있는 평안도 있다. 이런 것들은 당장은 우리를 위로해주고, 평안을 주는 것같지만 오히려 더 큰 구덩이에 빠지게 만드 ‘화학 감미료’와 같은 것들일 뿐이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세상이 주는 가짜 평안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영혼이 진정으로, 아주 깊게 누릴 수 있는 진짜 평안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주고 있다. 22 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23 절.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성령의 임재’가 있는 인생은 세상의 그 어떤 것에서도 주지 못하는 ‘화평’의 열매, ‘평화’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화평’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 하는데 구약에서는 ‘샬롬’이라는 단어와 같은 뜻이다.
요14:27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에이레네’와 세상이 주는 ‘평안’을 구분하여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세상이 주는 평안이나 위로나 화평은 당장에는 문제를 덮어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은 문제를 해결할 힘과 지혜를 준다. 결국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속이는, 세상이 주는 평안은 가짜 단맛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져주시는 ‘평안’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권이고, 선물이라는 말씀이다.
성도여러분! 우리 중에 평안과 위로와 회복이 필요없는 인생은 없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을 깊이 덮어주고, 마음을 더 단단하게 붙들어주는 우리 하나님의 ‘진짜 평안’이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 위에 부어지기를 축원한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화평, 평화, 평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의 ‘에이레네, 샬롬’은 그 출발점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위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성품 중에 하나인 ‘샬롬, 평안’을 아담과 하와 속에 심어 주셨다. 그래서 아담과 화와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평안’이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부여받은 ‘자유 의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와 불순종을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그로 인해서 ‘평안’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진정한 평안, 샬롬’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5장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가 죄를 반복하고, 악한 것인 줄 알면서도 그 속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당장 나를 기쁘게 만들어주고, 마음에 위로를 주는 쾌락과 게으름과 거짓의 삶과 비난의 삶에 깊이 빠지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항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무서운 죄까지도 거침없이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나고 나면, 그때서야 잘못했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울고 불고 돌아온다.
그러나 이렇게 혼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니까 혼을 내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혼이 나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는 사람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유기’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버리심’이다.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은 아무리 악을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못된 마음과 뾰쪽한 혀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그냥 가만히 두신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다가 ‘지옥’갈거니까. 이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성도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즐기면서, 거친 말과 악한 생각만 가득하고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 어려움도 없고, 거짓말과 악한 짓을 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살아도 잘 된다면 그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그렇게 살도록 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먼저 ‘화평’을 회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되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과의 ‘화평’, ‘평안’을 누리는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화평,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예수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성령의 열매로서의 화평은 내 마음의 평안으로 끝나지 않는다. 화평을 받은 사람은 오히려 갈등과 분열과 싸움이 있는 곳에 ‘화평’의 중재자가 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이라는 것이 그 사명에 대해서 잘 서술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리고 우리의 교회가 평화의 도구, 화평의 도구가 되는 아름다운 열매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난 목요일은 우리 민족이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625전쟁이 일어난지 76년이 된 날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미친 자들이 조국 통일이라는 명분으로 동족을 총칼로, 그리고 죽창으로 잔인하게 죽이고, 특히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성도들을 죽이고, 교회를 불태웠다. 공산주의라는 미친 이데올로기에 물든 자들의 모습이다.
성도여러분!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결코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그 어떤 이념과 이데올로기도 완전한 진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하는 뭔가 새로운 ‘평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한 노력들은 결국 오늘도 보이지 않는 ‘바벨탑’을 계속 쌓아가는 것이고, ‘바벨탑’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진리 아닌, 이념에, 이데롤로기에 인생을 걸지 말야아 한다. 화평, 평화는 우리의 ‘노력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눈물과 근심과 걱정과 아픔과 고통이 우리를 엄습할지라도 하늘의 평화, 내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는 ‘성령의 열매’, ‘화평의 열매’는 결코 빼앗기지 말자.
그래서 우리 성도들과 가정에 하늘의 평화, 성령의 열매가 한 가득 맺혀져, 웃을 일 없는 이 땅과 조용할 날이 없는 이 땅에서 언제 어디서나 평화의 도구가 되어 살다가 부르시는 그 날에 영원한 평화의 나라, 화평의 나라에까지 이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