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만들었지만 왕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장보고
역사의 뒷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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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만들었지만 왕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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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신라하대 #왕위쟁탈전 #청해진 #삼국사기
군사 오천을 빌려줘 왕 하나를 만들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7년 뒤 그는 술자리에서 자기 칼에 목이 잘렸습니다. 신라에서 왕이 3년 만에 네 번 바뀌는 동안, 그 담장 바깥에 있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으로 따라가 봤습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836년 12월 흥덕왕이 후사 없이 죽은 뒤, 2년 7개월 동안 왕좌가 네 번 주인을 바꾼 과정
희강왕은 궁 안에서 스스로 목을 맸고, 민애왕은 나흘을 쫓기다 잡혔으며, 신무왕의 재위는 백여든하루였다
780년 이후 신라 하대 155년간 왕 스무 명, 평균 재위 여덟 해가 안 되던 시대의 기준선
816년 먹을 것을 구해 당나라 절동까지 건너간 신라 사람 백일흔 명, 그리고 821년 자손을 팔아 살아간 기록
833년 대기근과 전염병 바로 다음 해, 조정이 내놓은 법은 빗과 비녀의 재료를 신분별로 정하는 것이었다
828년 완도에 선 청해진과 군사 만 명, 그리고 두 번이나 내려진 당나라의 신라 노비 매매 금지령
골품제와 상대등, 시중이 왕위 다툼에서 실제로 무슨 뜻이었는지
839년 윤정월 19일 달벌 전투, 약 팔천 대 기록상 십만, 그리고 이름이 남지 않은 전사자들
845년 조정이 장보고 딸의 혼인을 막으며 내놓은 이유, 그리고 846년 염장의 거짓 항복
851년 청해진 혁파와 벽골군으로 옮겨진 약 십만, 그들이 뒷날 무엇의 바닥이 되었는지
※ 달벌 전투의 관군 십만은 삼국사기 기록을 그대로 옮긴 수치입니다. 851년 청해진 주민 이주 규모 약 십만은 삼국사기 원문에 인원수가 없어 뒤의 기록이 잡은 추정치입니다. 장보고의 사망 연도는 삼국사기가 846년, 일본 측 속일본후기가 841년 11월로 적어 기록이 엇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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