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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지운 건 누구인가" 김형욱은 왜 혼자 파리로 갔을까? |실종 19일 뒤 궁정동 총성, 역사의 역설

그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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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지운 건 누구인가" 김형욱은 왜 혼자 파리로 갔을까? |실종 19일 뒤 궁정동 총성, 역사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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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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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놈을 그냥 두면 우리 조직이 뭐 하는 곳이겠느냐" — 1979년 10월 13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국정원 과거사위 조사 결과 보도) 1979년 10월 7일 일요일 저녁, 프랑스 파리. 6년 3개월 동안 중앙정보부장으로 군림했던 김형욱이 카지노 '르 그랑 세르클'을 나선 뒤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3선 개헌의 일등공신에서 버림받은 망명객으로, 1977년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폭로하며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 남자'가 되었던 그. 그러나 동백림 사건으로 대표되는 무리한 수사와 가혹 행위의 책임자였다는 비판도 끝내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50만 달러에 사들인 회고록 원고, 그럼에도 일본에서 출간된 책, 그리고 경호원 없이 떠난 파리행.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김재규 부장의 지시로 주프랑스 공사와 중정 연수생, 동유럽인 2명이 그를 파리 근교 숲에서 권총으로 살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양계장 분쇄기설, 사우디로 갔다는 미 국무부 문서, 서울 압송설까지— 그의 유해는 47년이 지난 지금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종 19일 뒤, 그를 지우라고 지시한 김재규는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 김재규의 재심 선고는 2026년 12월 16일로 잡혔지만, 파리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죽음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영상 타임라인] 0:00 그날 밤, 파리 1:02 남산의 2인자 (김형욱의 권력) 1:59 버림받은 공신, 망명길에 오르다 2:59 1977 프레이저 청문회 폭로 4:41 50만 달러짜리 회고록 원고 5:44 홀로 떠난 파리행 6:37 10월 7일 밤, 숲속의 7발 8:44 19일 뒤 궁정동 총성 (10·26) 10:19 엇갈린 증언과 무성한 의혹 12:29 끝내 찾지 못한 유해 13:59 우리에게 남은 질문 ---------------------------------------------------------------- 📚 [영상 및 자료 출처] • 영상: KBS 다큐멘터리극장 「김형욱 실종 미스터리」(1993), KBS 「최장수 중정부장 김형욱의 부상과 몰락」(2005), KBS 뉴스(2005.5.26), MBC PD수첩 「현장검증! 김형욱 양계장 암살」(2005), MBC 뉴스특보(1979), SBS, KTV 대한뉴스(제748호, 박정희 대통령 서거·국장·공판 1979) • 자료: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중간 조사 결과(2005.5.26) 및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2007), 경향신문·한겨레·대자보·매일일보·통일뉴스·MBC·SBS 2005.5.26 보도, 미국 국무부 주간동향보고서(1980.2.29, 2005 비밀해제 · 중앙일보 2005.5.20), 시사저널(2005.4), 오마이뉴스, 주간경향(2005.2.22), 한겨레(2005.4), 중앙일보(200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연합뉴스·조선비즈·뉴시스(2026.9.30), 위키백과,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 사진) ※ 다툼이 있는 대목(양계장설·사우디 문서·서울 압송설·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 여부)은 누가 한 말인지 밝혀 인용했습니다. 일부 카드 바탕은 설명용 생성 그림입니다. #김형욱 #김형욱실종 #중앙정보부 #김재규 #박정희 #프레이저청문회 #남산의부장들 #한국현대사 #그때그사람 #미스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