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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선물한 아내와의 일주일

낭만 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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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선물한 아내와의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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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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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예기치 못한 순간들이 때로는 평생 잊지 못할 가장 큰 선물이 되곤 한다. 내게는 1993년 시드니항에서 맞이한 연말연시가 바로 그러했다. 당시 나는 미국 선적의 컨테이너 화물선에서 기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선박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지만, 자유로운 미국 선적 덕분에 아내를 배로 불러들일 수 있는 귀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마침 학교에 근무하던 아내의 방학 기간과 배의 정박 일정이 기적처럼 맞물렸다. 12월 30일, 아내는 머나먼 시드니로 날아와 마침내 내 곁에 섰다. 31일 밤, Sydney Harbour Bridge를 중심으로 밤하늘을 수놓던 그 화려한 불꽃놀이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Opera House 주위로 모여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아내와 손을 맞잡고, 주변 상가에서 나눠주는 맥주를 마시며 새해를 맞이하던 그 순간. 바다 위에서 외롭게 보낸 고단한 시간들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선물은 새해 첫날부터 시작되었다. 연말연시를 맞아 현지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화물을 실어야 할 배의 발이 묶이면서, 우리 부부에게 일주일이라는 뜻밖의 긴 휴가가 선물처럼 주어졌다. 우리는 그 여유를 품고 시드니 서쪽의 '블루마운틴'으로 향했다. 유칼립투스 잎에서 증발한 휘발 성분이 햇빛에 반사되어 산 전체가 푸른 안개에 싸인 듯 신비롭게 빛나던 곳. 세 자매 바위의 전설을 들으며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바라보던 아내의 설레는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선박의 오랜 금기를 깨고 미국 선적이라는 행운을 빌려 함께했던 그 시간들. 노조의 파업마저 우리 부부의 재회를 축업하는 듯 느껴졌던 그 일주일은, 지난 20년간 때로 천시받기도 했던 나의 선원 생활이 그 어느 직업보다 자랑스러운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눈부시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