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궁녀는 2001년까지 살아 있었다 | 나라가 망한 뒤에도 낙선재를 떠나지 않은 상궁들
실록과 야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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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지막 궁녀는 2001년까지 살아 있었다 | 나라가 망한 뒤에도 낙선재를 떠나지 않은 상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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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과 야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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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 여든두 살 할머니가 서울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남긴 것은 몸뻬 바지 두 벌과 2만 3천 원이 든 지갑.
신문은 이 할머니를 "조선 왕조의 마지막 상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궁에 들어간 해는 1933년, 나라가 망하고 23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임금도 떠난 궁에 왜 들어갔고, 모시던 분이 세상을 뜬 뒤에는 왜 평생 혼자 살았을까요.
■ 따라가는 이야기
1933년 창덕궁 문 앞에 선 열다섯 살 소녀 성옥염에서 출발합니다. 임금은 없었지만 궁 동쪽 끝 낙선재에는 순종의 부인 윤비(순정효황후)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궁녀라는 자리를 봅니다. 이르면 네 살에 들어가 열다섯 해 뒤 관례를 치르고, 다시 열다섯 해를 채워야 상궁이 됐습니다. 관례 날 친정에서는 버선과 장롱, 잔치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신랑 자리만 비어 있는 혼례였습니다.
"궁녀는 죽어야 궁을 나온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나갈 길은 셋 있었습니다. 다만 법은 내보낸 궁녀와 혼인한 남자를 곤장 백 대로 다스렸습니다.
1894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두 사람, 윤비와 상궁 김명길의 60년도 따라갑니다. 나라를 잃은 궁 안에서 함께 영어를 배우고, 전쟁 때는 부산으로 피란을 가고, 휴전 뒤에는 정부가 환궁을 막아 정릉에서 일곱 해를 보냈습니다.
임금의 밥상을 짓던 주방 상궁 한희순은 1971년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가 됩니다.
1966년 윤비가 세상을 떠나자 상궁들은 삼년상을 치르고 궁을 나섰습니다. 1981년, 1983년 겨울, 그리고 2001년. 세 번의 부고와 마지막 상궁이 남긴 유언 한 줄까지 따라갑니다.
■ 알려드립니다
· 나이는 모두 세는나이로 말했습니다.
· 성옥염이 궁에 들어간 까닭은 본인이 남긴 말이 없습니다. "밥이 나오는 곳"이라는 대목은 당시 형편에 비춘 저희의 짐작입니다.
· "궁녀는 궁 밖으로 나와도 시집가면 안 된다"는 2001년 신문이 전한 궁중 법도의 내용이며, 성옥염 본인의 육성 인용은 아닙니다.
· 김명길 상궁의 입궁 나이는 자료에 따라 13세와 15세로 갈려 "열서너 살"로 말했습니다. 별세 시점도 1983년과 1984년 초로 갈려 "그 겨울"이라고만 말했습니다.
· 성옥염이 낙선재를 나온 해는 1969년과 1970년으로 자료가 갈립니다.
· 1910년 윤비가 옥새를 치마 속에 감췄다는 이야기와 1950년 인민군에게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는 전해 오는 일화로, 뒷받침하는 기록이 약합니다.
· 이승만 정부가 환궁을 막은 이유(옛 황후가 구심점이 될까 경계했다)는 후대의 풀이입니다. 정릉 거처의 이름은 자료마다 달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 가뭄 때 궁녀를 내보낸 까닭은 조선의 음양 관념으로 설명되는 내용을 풀어 말한 것입니다.
· 경국대전·속대전의 조문은 뜻을 풀어 옮겼습니다. 유언과 인용문은 낭독에 맞게 다듬었습니다.
· 상궁들이 끝까지 남은 까닭을 풀이한 대목(몸에 밴 세월, 법이 아니라 사람)은 저희의 해석입니다.
· 한희순 상궁은 1966년에 먼저 궁을 나왔고, 삼년상을 지킨 이는 김명길·박창복·성옥염 세 상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출처 ━━━━━
① 원사료
· 『경국대전』 형전, 『속대전』 (출궁한 궁녀와의 혼인을 처벌한 조문)
· 김명길,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
· 한희순·황혜성·이혜경, 『이조궁정요리통고』, 1957
· 동아일보 1926년 5월 27일 (순종 승하 뒤 윤비의 거처)
· 조선일보 1960년 5월 17일 (윤비의 낙선재 복귀)
· 한국일보 1983년 12월 (병상의 김명길 상궁 사진)
· 경향신문 2001년 5월 6일 「조선왕조 '마지막 상궁' 눈감다」
② 학술연구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198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궁녀」, 「순정효황후」, 「한희순」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궁녀의 굴레, 내명부」, 「관례와 호칭」, 「왕실에 봉사하는 궁녀」, 「궁녀가 하는 일」
③ 보조자료
· 매일신문 2012년 11월 21일 「역사 속의 인물 — 조선왕조의 한을 지켜본 박창복 상궁」
· 한국일보 2014년 12월 18일 「병상의 마지막 상궁」
· 서울신문 2013년 2월 7일 「김문이 만난 사람 — 궁중음식 중요무형문화재 한복려」
· 농민신문 2020년 5월 19일 「순정황후 윤씨, 50여 년 영욕의 현대사를 지켜보다」
· 이대학보 「여성과 권력(6)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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