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어린 마리아가 안나 요아킴과 함께]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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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어린 마리아가 안나 요아킴과 함께
그 입술에는 이미 아드님의 지혜가 있었다
샘가에서 노인이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감싸 쥐고 걸어옵니다. 첫 비행에 지쳐 물에 빠지기 직전이던 새끼 참새 한 마리입니다. 노인은 이 작은 새 한 마리로 두 살배기 딸에게 어떤 신비를 설명하려 합니다. 교회가 1854년에야 믿을 교의로 선포하게 될 바로 그 신비를 말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7장으로 들어갑니다.
때는 늦여름입니다. 포도가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그루터기만 남은 밀밭 위로 개양귀비가 불꽃처럼 일렁입니다. 구월에 태어난 마리아가 만 두 살 무렵, 성전 봉헌을 앞둔 나자렛 집 텃밭입니다. 포도 시렁 어귀에서 안나가 바느질하는데, 저쪽에서 어린 마리아가 걸어 나옵니다. 흰 아마포 옷에 하늘색 끈으로 목둘레를 여몄고, 꿀 빛깔 금발이 물결칩니다. 산들바람이 소매와 옷자락을 부풀리니, 책의 표현 그대로 "날개를 반쯤 펴고 날아오르려는 어린 천사" 같습니다.
작은 두 손에는 들꽃이 한 아름인데, 꽃마다 이야기를 붙여 어머니께 바칩니다. 딱 하나 찾은 아주 작은 물망초는 "주님께서 마리아를 사랑하신다고 마리아에게 말씀하시려고 만드신 꽃"이고, 빨간 개양귀비는 다윗 임금님의 찢긴 옷자락에서 피어난 꽃이랍니다. 샘 곁의 흰 꽃은 솔로몬 임금님의 옷으로 만들어진 꽃이라며, 새하얀 옷의 임금이 계약 궤 앞에서 환호하던 열왕기의 장면을 줄줄 꿰더니 이렇게 맺습니다. "나는 늘 이 꽃처럼 되고 싶어요. 한평생 성막 앞에서 노래와 기도를 부르고 싶어요." 성막 앞에서 살고 싶다는 이 아이가 훗날 성막 자체가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누가 일러 주었느냐는 물음에 아이가 답합니다. "늘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아요."
이어서 아이가 조릅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한 이야기를 또 들려주세요. 그리스도께서 약속되는 그 이야기요." 다니엘서 9장의 일흔 주간 예언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 유명한 셈법을 함께 풀어 봅시다. 다니엘서 9장 2절을 보면 다니엘은 그때 예레미야가 예고한 일흔 해의 유배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고, 가브리엘은 그 일흔 해를 일흔 주간으로 확장해 줍니다. 주간이란 이레의 날이 아니라 이레의 해입니다. 레위기 25장 8절이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하듯 일곱 해를 한 주간으로 묶으니, 일흔 주간은 사백구십 년입니다. 출발점은 다니엘서 9장 25절대로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 곧 에즈라기 7장이 전하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 제칠년, 기원전 457년입니다. 태양의 해로 예순아홉 주간 사백팔십삼 년을 그대로 더하면 서기 27년 무렵에 닿는데, 루카 복음 3장 1절이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이라 도장 찍은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해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기름부음받은 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책은 여기에 열쇠 하나를 더 얹어 줍니다. 훗날 성전의 소녀 마리아가 스승 한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흔 주간은 의인들의 기도로 줄어들 거예요. 햇수가 바뀐 거냐고요? 아니에요. 예언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다만 예언이 말하는 때의 척도는 해의 운행이 아니라 달의 운행이에요." 이스라엘의 달력은 달을 따랐고, 달의 해는 태양의 해보다 열하루쯤 짧습니다. 사백팔십삼 해를 달로 세면 태양력으로는 십수 년이 줄어, 마감이 예수님 탄생 무렵까지 당겨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책의 뒷부분, 열두 살 예수님의 성전 장면에서 대학자 가말리엘은 일흔 주간이 십 년쯤 전에 다 찼으니 메시아는 이미 태어나셨어야 한다고 논증하고, 소년 예수님께서 그 말이 옳다고 확인해 주십니다. 일흔 주간이 다 찼을 때 세상이 그토록 평화로워 카이사르가 호적 등록을 명할 수 있었다고요. 루카 복음 2장 1절의 그 호적 등록, 곧 성탄의 해가 마감이었다는 것입니다. 태양으로 세면 기름부음의 해에, 달로 세면 탄생의 해에 닿으니, 어느 쪽으로 세어도 예언은 역사상 단 한 사람, 예수님께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9장 26절이 예고한 "도성과 성소는 앞으로 일어날 군주의 군대가 허물어 버리리라"는 서기 70년 로마 티토 군단의 성전 파괴로 채점되었습니다.
아이는 이 이야기를 눈 감고 따라 외우더니 묻습니다. 임마누엘을 모시기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삼십 년쯤이란다. 그러자 금빛 속눈썹에 눈물이 맺힌 채 다시 묻습니다. 내가 밤낮으로 기도하고 한평생 오직 하느님만의 것이 되면, 그분께서 메시아를 더 일찍 보내 주실까요? 두 살배기가 구세주의 오심을 앞당기려고 제 인생을 걸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보셨지요. 이 책은 일흔 주간이 의인들의 기도로 줄어들었다고 증언합니다. 두 살배기의 이 기도를 하늘이 산수에 반영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눈여겨보십시오. 다니엘에게 시간표를 계시한 천사가 가브리엘이었는데, 루카 복음 1장 26절에서 그 시간표의 마감을 알리러 나자렛으로 파견되는 천사도 가브리엘입니다. 카운트다운을 연 천사가, 지금 그 이야기를 조르는 이 아이에게 카운트다운을 닫으러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결심이 이것입니다. "나는 기도하겠어요. 그리고 이 일을 위해 동정녀가 되겠어요." 눈으로는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고 마음과 생명은 오직 그분께 드리는 것이라고, 동정의 정의까지 스스로 밝힙니다. 이유가 사랑스럽습니다. 이사야가 예고한 동정녀, 곧 메시아의 어머니가 이미 어딘가 계실 테니 "나는 그분의 동무가 되고, 그분의 시녀가 되겠어요"라는 것입니다. 그 예언이 이사야서 7장 14절인데, 히브리 본문의 젊은 여인을 그리스어 성경이 동정녀로 옮겼고 마태오 복음 1장 23절이 "동정녀가 잉태하여"로 확정했지요. 아이는 그 동정녀가 자신인 줄만 모릅니다. 남의 시녀가 되겠다던 아이가 훗날 천사 앞에서 "주님의 종입니다" 하고 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장의 절정은 아이의 엉뚱한 질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죄인이 될 수도 있나요?" 길 잃은 이가 구원받는다면, 내가 길을 잃지 않고서야 구세주께서 어떻게 나를 구원하시겠느냐는 것이지요. 안나가 말문이 막힌 그때, 샘가에서 돌아온 요아킴이 두 손의 참새를 내밀며 답합니다. 첫 비행에 지친 이 참새가 그대로면 샘에 빠졌을 게다. 나는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았단다. 그리고 묻습니다. "내가 이 참새를 미리 구해서 더 사랑한 것이겠니, 아니면 빠진 뒤에 구했더라면 더 사랑한 것이겠니?" 아이가 답합니다. "지금 더 사랑하신 거예요." 아버지의 결론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너를 더 사랑하신 거란다. 네가 죄짓기 전에 너를 구해 주셨으니까."
방금 들으신 것이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의 가장 완벽한 교리 교육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92항은 마리아께서 "아드님의 공로로 보아 뛰어난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셨다"고 가르치는데, 그 뛰어난 방법이 바로 미리 구해 냄입니다. 지난 시간의 둔스 스코투스가 평생 논증한 그대로, 빠진 뒤 건지는 것보다 빠지기 전에 지키는 것이 더 큰 사랑입니다. 신학자들이 책으로 쓴 논증을 요아킴은 참새 한 마리로 해냅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마리아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도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 때 세례로 건져진, 물에 빠지기 전의 참새들입니다. 요한 1서 4장 19절이 오늘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새깁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받아쓰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장의 진짜 기적을 짚어 주십니다. 어린 마리아의 놀라운 지혜 자체가 아니라 그 지혜를 둑 안에 가두어 숨기신 것이 기적이라고요. 콜로새서 3장 3절대로 참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 법입니다.
세 살도 안 된 아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하느냐는 반박에, 받아쓰기는 실존한 거룩한 아이들 넷을 증인으로 세우는데, 그중 하나가 1903년 아일랜드 코크의 넬리 오건입니다. 세 살에 병든 몸으로 수녀원에 맡겨진 이 아이는 성체를 거룩하신 하느님이라 부르며 사무치게 갈망했고, 규정보다 한참 이른 네 살에 특별 허락으로 첫영성체를 한 뒤 서른두 번 주님을 모시고 네 살 반에 하늘로 갔습니다. 이 사례를 보고받은 성 비오 10세 교황이 내가 기다리던 표징이라 말했다고 전해지며, 1910년 칙령 쾀 싱굴라리로 첫영성체 나이를 열두 살에서 철드는 일곱 살 무렵으로 낮추었습니다. 오늘 전 세계 어린이들이 일찍 성체를 모시는 것은 네 살짜리 한 아이 덕분인 셈입니다.
그러니 오늘, 무엇을 이루어야 사랑받을지 계산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소리 내어 고백해 보십시오. 나는 넘어진 뒤에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넘어지기도 전에 이미 건져진 사람이다. 먼저 받은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를 미리 구원해 두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먼저 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8장, 세 살 마리아가 성전에 받아들여지는 날, 자신이 지혜 가득한 분임을 알지 못한 겸손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