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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딤대하라

God Is So Good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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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딤대하라

78 просмотров · 10 дней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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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를 읽다 보면 한 사람의 믿음이 어떻게 말씀과 순종을 통해 자라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성경은 여호수아가 실제로 두려워했다고 직접 기록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반복해서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크고 엄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 여호수아 1:6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 여호수아 1:7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 여호수아 1:9 여호수아가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강하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 담대함의 근거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호수아 1장의 마지막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도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 여호수아 1:18 처음에는 여호수아 자신이 격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말씀을 따라 실제로 걸어갔습니다. 여기서 홍해와 요단강을 비교해 보면 중요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홍해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모세가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열린 마른 길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약 40년 후 요단강 앞에서는 달랐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흐르는 요단강 물에 발을 담갔을 때 비로소 물이 멈추었습니다. 홍해에서는 길이 열린 후 걸었고, 요단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먼저 발을 내디뎠을 때 길이 열렸습니다. 성경이 이 두 사건을 직접 “초보 믿음과 성숙한 믿음”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믿음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길을 먼저 보여주신 후 걷게 하시고, 때로는 길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말씀을 믿고 먼저 순종의 발을 내딛게 하십니다. 물이 갈라져서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걷는 것입니다. 요단을 건넌 후에는 여리고 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을 주셨습니다. 성을 엿새 동안 하루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삶에는 승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는 패배했습니다. 여호수아 7장은 그 패배의 원인을 아간의 범죄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드러내시고 처리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 다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승리에서만 하나님을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패와 징계와 회복의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신실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10장에 이르면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과 싸웠던 다섯 왕이 붙잡히자 여호수아는 지휘관들에게 그 왕들의 목을 발로 밟게 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 여호수아 10:25 여호수아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수아가 다른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실제 삶의 전쟁과 실패와 회복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작은 비유가 있습니다. 옛날 만화의 뽀빠이와 올리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브루투스가 올리브를 괴롭힐 때 올리브가 뽀빠이를 부르면 뽀빠이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줍니다. 처음에는 “뽀빠이를 부르면 도와줄 것이다”라는 말을 알고만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불렀고, 그가 와서 자신을 구해주는 것을 경험했다면 그 다음에는 이전과 다른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만화 속 인물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비유는 단지 ‘들어서 아는 것’과 ‘관계 속에서 경험하여 아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요한복음 17:3 여기서 “안다”는 헬라어 ‘기노스코’는 문맥에 따라 단순한 정보적 지식 이상으로 관계적 앎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야다’ 역시 여러 문맥에서 관계적이고 경험적인 앎을 표현합니다. 두 단어는 서로 다른 언어의 단어이지만,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갖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며, 실제 삶 속에서 그분의 성품과 신실하심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는 계속 선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은 말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창세기 3:4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 내 욕심, 세상의 기준이 충돌하는 순간을 만납니다. 그때 무엇을 따라갈 것인가가 믿음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첫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과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 마태복음 4:4 그리고 그 순종의 절정은 십자가였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마태복음 26:39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모르고 십자가로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가올 고난을 아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8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시선은 여호수아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히브리서 12:2 여호수아의 생애 마지막에도 믿음과 순종은 하나의 고백으로 정리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다시 들려준 후 선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여호수아 24:15 이 고백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에서 경험한 하나님, 여리고에서 경험한 하나님, 실패 가운데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 전쟁에서 함께하신 하나님,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을 평생 경험한 사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찬양 〈강하고 담대하라〉는 바로 그 믿음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홍해에서 길을 여신 하나님, 요단강에서 순종의 발걸음을 요구하신 하나님, 여리고의 성벽을 무너뜨리신 하나님, 실패 가운데 죄를 드러내시고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믿음의 완전한 본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 믿음은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잘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여 그 말씀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길이 보일 때에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걷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알게 됩니다. 그 모든 순간 우리를 붙잡고 계셨던 분은 하나님이셨음을. 그래서 오늘도 다시 말씀을 듣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고백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아멘!! 주님께 모든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