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21 할아버지께
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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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1 할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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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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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바람에 일렁이는 눈부신 오늘의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습니다.
무르익은 봄의 온기 속 녹아든 당신의 오랜 사랑이 짧아진 소매 아래로 살며시 내려앉았습니다.
제가 딛고 선 이 땅 아래, 흙으로 돌아간 당신의 숨결이 굳건히 제 두 다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당신의 시간이 오늘을 살아가는 제 숨결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1935년.
2001년.
책 속 이야기로만 여겨왔던 역사라는 시간 속에, 할아버지의 삶도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빨라져만 가는 세상 속에서, 할아버지께서 오래도록 지켜오신 것들을 저는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거실 유리창 옆에는 짙은 갈색의 리클라이너가 놓여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그 소파에 앉아 어제와 같은 세상을 바라보셨습니다.
시끄럽게 떠드는 라디오 소리마저 희미해질 만큼, 할아버지는 말없이 창 너머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오래 함께한 소파의 밝은 갈색 가죽이 거의 다 벗겨져 앙상해져 갈 즈음, 저는 첫 월급으로 지금의 짙은 갈색 리클라이너를 들여놓았습니다.
세월은 소파의 색을 짙게 물들이고, 반듯하던 할아버지의 몸을 조금씩 눕혀 갔습니다.
비스듬히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는 이제 두 손을 가슴 위에 가지런히 모은 채 눈을 감고 계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가끔 라디오 너머로 들려오던 할아버지의 목소리 대신, 곤히 내쉬는 그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제가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할아버지가 계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할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 정신없이 북적이는 병원 의자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과 같은 자리에 놓인 소파 위의 할아버지는 더 이상 창밖의 세상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요.
세상을 향하던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눈꺼풀 뒤에 가려져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자, 저는 그제야 후회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거라 믿었기에, 저는 할아버지의 시선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여쭤보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형체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당신의 어떤 것을 기억해야 할까요.
당신께 물려받은 눈과 마음으로, 오래전 할아버지께서 지나오신 시간이 깃든 오늘을 온전히 살아가겠습니다.
언젠가 할아버지를 흔적으로만 느끼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당신의 숨결이 향하던 그 끝의 풍경만은 오래도록 제 안에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