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인문학] 조리돌림 당하는 조선 노비제도의 진실 _261022
홍익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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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인문학] 조리돌림 당하는 조선 노비제도의 진실 _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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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노비 비율은 많을 때도 30~40% 수준이었고,
후기로 가면 10%도 안 될 만큼 줄었다.
노비들이 돈을 모아 성씨를 사면서 노비제는
개혁 이전부터 이미 사라지는 중이었다.
전기에 노비가 많았던 건 노동시장이 덜 발달해
노비를 쓰는 편이 경제적으로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외거노비는 계약 관계에 가까워 농노보다도 자유로웠으니,
서양식 노예와 같은 선에 놓고 볼 수 없다.
세종의 종모법을 노비 증가의 원인으로 모는 건 근거 없는 비난이다.
노비가 크게 불어난 건 세조가 공신들의 재산을
불려주려고 일천즉천제를 시행하면서부터다.
쿠데타로 집권한 탓에 민심보다 공신을 챙기느라,
세종과 문종이 만 년을 내다보고 세운 터전이 무너졌다.
세종은 법마다 제정 이유와 적용 범위를 기록했지만,
세조는 이를 싹 갈아엎고 밀어붙였다.
평등의식이 강한 조선 사람이 같은 조선 사람을 부리려면
주인도 노비 눈치를 보며 경영을 잘해야 했다.
임진왜란 때는 노비들이 도망가고 주인이 노비에게
굽신거린 기록도 남아 있고, 주인보다 부유한 노비도 있었다.
농업사회는 어디나 노동력이 필요했고, 그 형태가
노비든 농노든 노예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랐을 뿐이다.
결론부터 내려놓고 비하할 게 아니라, 자명한 사관으로
있는 그대로 봐야 지금을 바르게 판단할 지혜가 나온다.
노비 관리의 역사는 오늘날 노사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타국민을 잡아다 노예로 쓰지 않았기에,
우리는 떳떳하게 홍익인간을 외칠 수 있다.
검수 & 자막 : 선비
(261022 양덕LIVEⅡ)
※ 6남매 - 깨어있는 의식의 6가지 덕목(초연, 따뜻, 긍정, 충만, 유연, 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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