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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열매 후추는 왜 한때 금처럼 귀했을까? 로마에서 조선까지

이유있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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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열매 후추는 왜 한때 금처럼 귀했을까? 로마에서 조선까지

8 просмотров · 7 дней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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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년, 로마를 에워싼 알라리크는 금·은과 함께 후추 3000파운드를 몸값으로 요구했습니다. 작은 덩굴 열매는 어떻게 금과 나란히 놓였고, 어쩌다 식탁 위 흔한 양념이 되었을까요? 408년 서고트 왕 알라리크는 로마를 포위하고 금·은과 함께 후추 3000파운드를 몸값으로 받아 냈습니다. 이 영상은 작은 덩굴 열매가 어떻게 그토록 귀해졌고 왜 흔해졌는지를 묻습니다. 인도 말라바르 해안에서 시작해 로마의 몬순 뱃길, 중세 베네치아의 중개, 조선 성종의 후추 씨앗 구하기, 1498년 다 가마의 캘리컷 도착을 시간 순서로 따라갑니다. 마지막에는 영국·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경쟁과 은 공급 감소가 후추값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봅니다. ▶ 이 영상에서 알 수 있는 것 알라리크가 로마에 요구한 몸값 목록에 후추가 오른 까닭 로마 학자 플리니우스가 남긴 후추값과 불평 중세 유럽에서 후추가 세금·임대료로 쓰인 기록 조선 성종이 후추 씨앗을 구하려다 실패한 이야기 공급이 늘고 은이 줄면서 후추값이 내려간 과정 ▶ 챕터 0:00 몸값이 된 후추 1:01 후추는 어디서 왔나 2:19 로마의 후추 길 5:26 중세의 검은 금 7:59 동쪽의 후추, 조선의 꿈 10:43 바닷길을 찾아서 12:52 흔해진 후추 13:59 후추가 남긴 것 조선 성종이 일본에 후추 씨앗을 구해 달라고 청한 대목에서, 동쪽의 후추 이야기도 함께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