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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0절

Jubilee C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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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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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bilee C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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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창 (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 요약 오늘 본문은 에브라임 산지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과 그의 첩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시대를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로 표현하며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떨어져 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1절) 남자는 에브라임 산지에 거류하는 반면 첩은 베들레헴 출신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여인은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여기 개역개정은 “그 첩이 행음”했다고 하는데 행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행음도 되지만 화를 내다 혹은 싫어하다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문맥을 보면 “행음”이 아니라 화가 난 것이 더 맞습니다. 남자가 처가에 가서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한다고 기록된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장인은 딸을 데리러 온 사위를 환대하고 잔치를 벌입니다. 3일 후에도 계속 남기를 바라자 레위인은 마지못해 하루를 더 묵고 다음 날 저녁 돌아가고자 길을 나섭니다. 약간은 K-드라마의 한 에피소드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도대체 성경의 이런 내용은 어떻게 묵상을 해야 할까요? 묵상 포인트 사사기 기록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왕이 없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내러티브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통치자의 부재가 아니라 제멋대로 살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기록한 것입니다. 즉 언약백성이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교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교회의 “부흥”이 숫자로 결정되고, 성도가 아니라 소비자로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는 투자와 멤버십 요금을 마치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으로 착각하는 시대가 바로 사사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왕인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구약에는 일부다처의 상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그 외 언급되는 많은 인물들을 보면 아내와 첩이 언급되어 마치 일부다처제가 정상을 넘어 장려된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성경 전체를 두고 볼 때 예수님이 신랑이고 교회가 신부라는 것은 부부가 일심동체여야 함을 더 알게합니다. 더군다나 17-18장은 우상의 제사장이 된 레위인을 기록한 후 이제 19장에서 첩을 두는 레위인에 대한 기록은 언약과 결혼의 질서가 무너진 것을 잘 보여줍니다. 즉 성도를 소비자로 만드는 배경에는 세상을 첩으로 두는 목회자들, 복음의 부르심이 없이 목회를 단순히 직장 정도로 생각하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어떤가요? 한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수보다 훨씬 많은 신학생이 배출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과연 한국 교회는 복음에 대한 소명이 있는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을까요? 레위인의 장인의 환대는 참 풍성합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기록된 내용은 환대의 정반대 상황으로 전환됩니다. 내일과 모레 보게 됩니다만, 미리 이야기를 하자면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에서 일어날 끔찍한 성범죄가 일어나기 전의 폭풍전야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으로 고아와 과부는 물론 나그네에게도 환대를 해야 마땅한데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추악한 모습을 보입니다. 한국에서 탈북자 청소년들을 위한 여명학교가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지역이든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 반대를 하고 난리를 피웁니다. 궁금합니다. 그 지역에는 교회가 없습니까? 그 아파트 단지에는 크리스천이 없습니까? 왜 장애인의 부모들이 그리고 탈북자를 가르치는 선생들이 아파트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합니까? 소비자를 만들어내는 소명감 없는 목사들, 세상의 부귀영화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얻고자 시간과 헌금을 투자하는 소비자 종교인들, 그리고 고아와 과부의 환난을 돕기는커녕 그들이 자립하는 것이 방해 받아도 모른척 하는 자칭 “교회”들이 세운 십자가는 도대체 어떤 십자가인지 사사기 묵상을 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집니다. Support the show (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