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은 왜 인현왕후의 얼굴을 그리지 못했을까, 조선 왕비의 초상이 단 한 점도 남지 않은 이유
조선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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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왜 인현왕후의 얼굴을 그리지 못했을까, 조선 왕비의 초상이 단 한 점도 남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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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인현왕후, #기사계첩, #조선왕비, #조선그림
1695년 가을, 숙종은 살아 있는 왕비 인현왕후의 얼굴을 그리게 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여섯 해 전 자기 손으로 궁 밖으로 내쫓았다가 한 해 전에 다시 들인 아내였습니다. 화원은 왕비 앞에 앉을 수 없었고, 그림 그릴 줄 아는 친척을 들이려던 임금의 명은 승정원에서 우의정까지 여섯 차례 반대에 막혀 끝내 거둬졌습니다. 첫 왕비의 죽음과 장희빈, 폐위와 복위, 열흘 뒤 배 한 척에 실려 강화로 간 임금 자신의 초상, 서른다섯 살 왕비의 마지막, 눈이 흐려진 말년의 기로소 잔치와 기사계첩까지. 조선 왕비의 얼굴이 왜 한 점도 남지 않았는지를 한 부부의 이야기로 따라갑니다.
⏱ 타임스탬프
00:00 1695년 가을, 왕비의 얼굴을 그리라는 숙종의 명
01:27 천연두로 떠난 인경왕후, 열다섯 살 인현왕후와 장희빈
03:31 경종의 탄생과 꿈 이야기, 인현왕후의 폐위와 복위
06:49 화원이 들어갈 수 없던 왕비의 처소, 김진규와 민진후
09:28 승정원에서 우의정까지, 여섯 번의 반대
12:07 배 한 척에 실려 강화 장녕전으로 간 숙종 어진
13:10 인현왕후의 마지막, 경춘전과 명릉의 빈자리
15:34 1713년, 진재해가 다시 그린 숙종의 얼굴
17:48 눈이 흐린 숙종, 기로소 어첩과 경현당 잔치
20:56 국보 기사계첩과 숙종의 마지막
22:01 조선 왕비의 초상이 남지 않은 이유, 명릉에 나란히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 1689년 4월 21일·5월 4일, 1695년 7월 27일·8월 7일, 1701년 8월 13~20일·9월 23일·25일, 1713년 3월 30일·4월 11일·21일, 1717년 7월 19일, 1719년 2월 10~12일·4월 18일 (국사편찬위원회)
https://sillok.history.go.kr
▶ 한희숙 「조선시대 왕비 초상화 제작과 그 중단 원인」 장서각 50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기사계첩」 「기사계첩 및 함」 「고양 서오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종」 「인현왕후」 「기사계첩」 「명릉」
https://www.heritage.go.kr
https://encykorea.aks.ac.kr
▶ 경향신문 「어진」 2020-03-11 (한국전쟁 뒤 부산 화재와 남은 어진),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신편 한국사』 「갑술환국」
https://www.khan.co.kr/article/202003...
▶ 그림: 「기사계첩」 (국보, 1719~1720년) · 「영조 어진」 (보물, 1900년 옮겨 그림,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이 영상은 국가유산청이 창작한 「기사계첩」 「고양 서오릉 명릉 전경(항공)」 「창경궁 경춘전」 저작물을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했습니다. (위키미디어 공용 경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