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주막에는 국밥이 없었습니다
세상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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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주막에는 국밥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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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모,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시오. 사극에서 수십 번 들은 이 대사는 조선 중기까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간판도 상호도 없었고, 잠값은 아예 받지 않았습니다. 그 허름한 집이 실은 걸어서 50분마다 불을 켜고 나라 전체를 잇던 그물이었습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1481년 기록 속 여행자는 쌀을 등에 지고 다녔습니다. 주막은 밥을 팔지 않았고, 1604년 기록에도 큰길가 주막에 있는 건 술과 풀과 땔나무뿐이었습니다
나라가 운영하던 여행자 숙소가 임진왜란 뒤 무너지고, 그 빈자리를 민간 주막이 메웠습니다. 국밥은 주막의 시작이 아니라 결과였습니다
간판도 상호도 없었습니다. 장대 끝 대나무 바구니 하나가 표시였고, 이름은 손님이 붙였습니다. 혹부리집, 우물집
1894년부터 조선을 네 차례 여행한 영국 여성이 잰 방은 가로 2.59미터 세로 1.83미터. 한 평 반이 안 되는 방에 열 명 안팎이 잤습니다
방 온도는 보통 27~29도, 자주 33도를 넘겼고 가장 심한 밤은 40도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불을 세게 땐 이유는 손님이 아니라 조랑말 먹일 죽 때문이었습니다
주모는 술·밥·숙박·외상·마구간을 혼자 굴린 자영업자였습니다. 글을 모르면 손님의 얼굴과 외상값을 부엌 벽에 칼로 그었습니다
1903년 폴란드에서 온 작가는 엽전 25킬로그램을 등에 졌습니다. 통역사가 첫 주막에 맡기고 영수증만 받으라고 했지만 끝내 믿지 않았습니다
주막은 10리, 약 4킬로미터마다 하나씩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10만 개, 인구 100명당 하나꼴로 지금 편의점보다 아홉 배 촘촘했습니다
1916년 주세령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집에서 술 빚는 걸 금지한 법이 아니라 면허제였습니다. 진짜 사망선고는 18년 뒤인 1934년에 왔습니다
14년 만에 96퍼센트가 사라졌습니다. 하루에 스물두 곳씩 문을 닫은 셈입니다
마지막 주모 유옥련은 열아홉에 들어가 아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서 69년을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