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도축이 금지된 조선에서 하루 천 마리를 잡은 백정들
세상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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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도축이 금지된 조선에서 하루 천 마리를 잡은 백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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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정, #백정, #조선시대, #한국사, #반인
소 잡는 게 법으로 금지된 조선에서 하루에 잡는 소는 천 마리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 칼을 쥔 건 조선에서 가장 천대받던 백정과 성균관 노비 반인이었습니다. 요즘 "백정은 양반보다 부자였다"는 말이 돌지만, 기록을 따라가 보면 그 돈은 그들 편이 아니었습니다. 번 만큼 뜯기던 그 돈이 처음 그들 편이 된 날까지 따라갑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 '백정'은 원래 고려의 평범한 농사꾼을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1423년 세종이 이 이름을 떠돌던 사람들에게 붙여 주었는데, 25년이 지나도 평민과의 혼인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 송시열은 임금 앞에서 "쇠고기를 못 먹으면 못 사는 줄 안다"고 한탄했고, 한 선비의 상소에는 하루에 잡는 소가 천 마리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 서울의 쇠고기는 성균관에 딸린 노비, 반인들이 쥐고 있었습니다. 도성 안 정육점(현방)은 스물세 곳 안팎이었습니다
· 1789년, 반인들이 서울 정육점 문을 사흘 동안 닫자 서울 제사상에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가 올라갔다고 합니다
· 1809년 개성, 혼례 날 관복을 빌려 입은 백정 신랑 — 그날 밤 두들겨 맞은 건 옷을 빌려준 사람이었습니다
· 곡식 100석이면 정3품 벼슬 이름을 적어 주던 공명첩의 나라에서, 백정은 갓 하나 마음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 정육점이 낸 돈(속전)은 소 도축을 단속하던 형조·사헌부·한성부 하급 관리들의 급료가 됐습니다
· 1895년 서울 관자골 백정들의 청원서 — "아전들이 수시로 와서 돈을 가져가고, 석 자 키 아이에게조차 반말을 듣는다"
· 1898년 10월 29일 종로 관민공동회, 대신들과 1만여 명 앞에서 첫 연설을 한 사람은 백정 박성춘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박서양은 1908년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일곱 명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 그리고 1910년 1월, 반인들이 고깃값을 모아 명륜동에 세운 학교 — 지금의 혜화초등학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