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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514] 밤낮없는 헌신을 요구한 채용 공고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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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지혜 #514] 밤낮없는 헌신을 요구한 채용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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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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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채용 공고가 세계 기술 업계의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2026년 10월 19일 자 지면으로 보도한 이 공고는 오픈AI, 스트라이프, 도어대시 등의 초기 투자자로 알려진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 회사 코슬라 벤처스의 설립자 비노드 코슬라 씨의 비서실장(chief of staff) 모집입니다. 공고가 요구한 조건은 명료합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사무실에 출근해 대면으로 일해야 하고, 필요할 때는 야간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연락이 닿아야 합니다. 이 일정을 3년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습니다. 인재 영입을 맡은 부사장은 링크드인 게시물에서 예측 가능한 근무 시간이나 정리된 지침서, 잦은 업무 지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자리라고 밝혔습니다. 반응은 크게 갈렸습니다. 수면 기술 기업 에이트 슬립의 마테오 프란체스케티 씨는 사업이 바쁘지 않았다면 직접 지원했을 것이라고 했고, 레딧 공동 설립자 알렉시스 오하니언 씨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자리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이 공고를 일종의 계약 노예에 빗댄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급여 범위가 공고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습니다. 회사 측은 1,000건 이상의 지원서가 몰릴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코슬라 씨는 금요일 늦게 자신의 X 게시물로 입장을 보충했습니다. 특정한 근무 시간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강도 높은 자리이며, 자신이 주 80시간을 일하는 만큼 그 속도를 따라올 사람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번 공고가 눈길을 끄는 더 큰 이유는 업계 전반의 흐름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 대학교의 역사학자 마거릿 오마라 교수는 이를 마음속에만 두던 말을 이제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젊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을 일하는 이른바 9-9-6 근무제가 퍼지고 있습니다. 보험 스타트업 코기는 지원자의 체력을 가늠하겠다며 주말을 포함한 며칠간의 업무 심사를 요구했습니다. 레몬라임이라는 스타트업은 올해 초 네트워킹 행사에서 회사 로고 문신을 새길 사람에게 면접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과로가 감추어야 할 부담이 아니라 드러내어 자랑하는 덕목이 되었다는 진단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를 노동시장의 힘의 균형으로 읽는 시각도 있습니다. 컨설팅 기업 그룹 360 컨설팅의 라힐라 안와르 대표는 채용 한파가 이어지는 지금이어서 이런 요구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지원자의 선택지가 넓었다면 사정이 달랐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 자리의 매력이 일자리 자체보다 그 이후에 열리는 출구(exit)에 있다고 짚었습니다. 비서실장직은 오래전부터 최고위직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져 왔고, 투자 검토와 포트폴리오 기업 협력,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곁에서 돕는 생각의 동반자(thought partner) 역할을 맡기 때문입니다. 코슬라 씨는 모든 분야를 알 필요는 없고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근본 원리(first principles)에서 사고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보통 기술 업계의 혹사 문화에 비판적인 제이슨 프라이드 37시그널스 공동 설립자도 이번 공고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대치가 매우 명확하다는 이유였고, 자신이 25세였다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습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이 자리를 지켰던 헤삼 모틀라그 스탠퍼드 대학교 겸임교수 역시 더없이 값진 배움의 경험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사실관계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이 소식을 우리 시니어 독자께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이번 공고에는 평가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조건을 숨기지 않고 처음부터 분명히 밝혔고, 지원자는 그것을 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호한 약속으로 사람을 끌어들인 뒤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일보다는 정직한 방식입니다. 한 분야의 정점에 선 사람 곁에서 일하며 배우겠다는 젊은이의 도전 의지도 폄하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세대 역시 젊은 시절 밤을 새워 일하며 오늘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선택이 자유로운 것과 그 선택이 건강한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일자리가 귀한 시기에는 지원자가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선택이 온전히 자유롭다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주 80시간의 노동을 3년간 이어가는 일은 건강, 가정, 인간관계에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헌신이 미덕이 되려면 정당한 보상과 회복할 시간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 공고가 급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그래서 아쉽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이 사안에서 얻을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일의 가치가 시간의 길이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친 분들께서는 성과와 신뢰가 쌓이는 방식이 무엇인지 이미 체득하고 계십니다. 다른 하나는 다음 세대를 대하는 어른의 책임입니다. 젊은이들이 치열하게 달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열정이 소모되지 않도록 지켜 주는 균형추 역할은 경험 있는 세대가 맡아야 합니다. 후배에게는 열심히 일하라는 말과 함께 오래 일하는 법도 일러 주어야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이 공고가 앞으로 일하는 방식의 기준이 될지, 한때의 과열된 풍경으로 끝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일의 목적은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는 점입니다. 치열함이 의미를 얻으려면 그 끝에 건강한 삶이 놓여 있어야 합니다. 시니어 여러분께서 쌓아 오신 지혜가 이 대목에서 젊은 세대에게 가장 값진 조언이 되리라 믿습니다. 캐어유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