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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한 집뿐이던 양반 우리 집 족보는 정말 양반이었을까? | 역사 | 옛살림을 열다

옛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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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한 집뿐이던 양반 우리 집 족보는 정말 양반이었을까? | 역사 | 옛살림을 열다

21 просмотр · 9 дн. наза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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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이면 장롱 깊은 곳에서 꺼내 펼쳐 보던 누런 족보 한 권…. 어르신들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양반이었다고. 그런데 조선 시대 한 고을의 호적을 들여다보면, 1600년대 말 양반으로 적힌 집은 열 집에 한 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70년 뒤에는 어떻게 열 집 가운데 일곱 집이 양반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우리 집 장롱 속의 족보는, 정말 처음부터 양반의 족보였을까요? 이번 영상에서는 가장 오래된 족보 성화보에서 시작해 공명첩과 호적 속 '유학' 두 글자, 남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던 사람들, 박지원의 「양반전」, 노비 문서를 불태운 날, 그리고 1909년 모두가 성을 갖게 된 날까지, 족보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진짜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온 나라 사람이 모두 양반이 되면, 온 나라에 양반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정약용의 이 한마디가 걱정이었는지 바람이었는지 알고 나면, 족보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 여러분은 집안 족보에서 몇 대손이신가요? 명절에 족보를 펼쳐 보신 기억이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 ⏱️ 영상 타임라인 00:00 우리 집 족보, 정말 양반이었을까 00:56 족보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01:52 처음 족보에는 딸도 있었다 03:00 열 집에 한 집 04:13 성이 없던 사람들 05:13 양반이 되면 달라지는 것 06:17 곡식으로 산 벼슬 07:18 호적 속 두 글자 08:26 족보에 이름을 올리다 09:33 양반을 산 부자 10:55 뒤집힌 숫자 12:08 노비들은 어디로 갔을까 13:21 모두가 성을 갖게 된 날 14:28 족보가 쏟아진 시절 15:39 우리 집 족보는 진짜일까 16:46 족보가 말해 주지 않는 것 📌 족보에 이름이 적히지 않은 조상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따라가 보세요. ※ 영상 속 그림은 AI로 만든 것으로, 이해를 돕기 위한 장면이며 역사적 고증을 거친 자료가 아닙니다. ※ 양반 비율은 대구 지역 호적을 조사한 연구에서 널리 알려진 수치로, 한 지역의 기록입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다음 옛살림 이야기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 옛살림 #족보 #양반 #조선시대신분제 #족보의역사 #공명첩 #양반전 #박지원 #정약용 #노비 #조선시대 #조선시대이야기 #옛살림 #한국사 #역사 #역사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