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ейти к содержимому

제29장.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이 계시면 하느님 나라 . 나.계.복. 하사시.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순전한 가톨릭(Mere Catholicism)

0:00 / 0:00

제29장.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이 계시면 하느님 나라 . 나.계.복. 하사시.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1 980 просмотров · 13 часов назад
순전한 가톨릭(Mere Catholicism)
37,7 тыс. подписчиков
1 980 просмотров · 13 часов назад
제29장. 예수님의 탄생. 마리아의 신적 어머니 됨이 지닌 구원의 힘 (루카 2,6-7) 예수님이 계시면 하느님 나라 성모님께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첫 입맞춤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마가 아니라 가슴, 작은 심장이 뛰는 그 자리에 입 맞추십니다. 왜일까요. 오늘 밤의 이야기는 그 입맞춤에서 십자가까지 한 줄로 이어집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29장으로 들어갑니다. 요셉이 깜빡 졸자 마리아가 "장미에 내려앉는 나비보다도 더 적은 소리를 내며" 일어나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려 기도합니다. 책은 그 자세가 "꼭 십자가 모양은 아니나 그에 가깝게"였다고 적습니다. 요셉이 깨어 세 번 묻고서야 답이 옵니다. "기도하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주무시도록 해 보시오." "기도는 저를 지치게 하지 않아요." 그리고 천장 틈으로 달빛이 "형체 없는 은빛 칼날"처럼 스며들어 마리아의 머리에 후광을 씌웁니다. 마리아가 부르심을 받은 듯 고개를 들자 빛이 자라고 자라고 또 자랍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초라한 것들에서 뿜어 나오는 듯, 무엇보다 마리아에게서 뿜어 나오는 빛입니다. 짙은 푸른색 옷이 물망초의 하늘빛이 되고, 마리아는 "하늘에서 자기에게 올 수 있는 그 빛을 제 안으로 끌어당기는" 이가 됩니다. 지혜서 18장 14절과 15절이 이 밤을 위해 미리 쓰였습니다.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교회가 성탄 팔일 축제 안 주일에 입당송으로 부르는 바로 그 구절입니다. 말씀은 소리 없이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동굴이 변모합니다. 그을린 천장이 왕궁의 천장이 되고, 돌 하나하나가 은덩이, 거미줄이 은과 다이아몬드로 짠 차양, 겨울잠 자는 도마뱀이 에메랄드 장신구, 박쥐 떼가 마노 등불, 늘어진 건초가 순은의 올, 구유가 닦인 은덩이, 바닥이 흰빛으로 타오르는 수정이 됩니다. 이사야서 60장 1절이 명령한 그대로입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그런데 이 동굴이 어떤 곳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허물어진 옛 건물의 잔해 아래였습니다. 다윗 고을에서, 허물어진 집의 잔해 위에서, 다윗의 자손이 태어나십니다. 아모스서 9장 11절이 그 밤의 도면입니다. "그날에 나는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벌어진 곳은 메우고 허물어진 곳은 일으켜서 그것을 옛날처럼 다시 세우리라." 사도행전 15장에서 야고보가 이방인 교회를 두고 인용한 그 예언이, 잔해 위의 굴이 왕궁으로 변모하는 이 밤에 문자 그대로 시작됩니다. 요셉이 이 빛에 눈을 뜨지 못한 것도 성경의 그림입니다. 열왕기 상권 8장 11절, 솔로몬 성전 봉헌의 날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6장에서 본 성막의 구름이 이 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빛 속에서, 타오르는 너울에 빨려 들어가듯 동정녀가 사라지고, 거기서 어머니가 솟아 나온다." 이것이 책이 그리는 탄생입니다. 고통도 소리도 없이, 빛 속에서. 지난 23장에서 성모님께서 친히 밝히셨듯 하와의 선고에서 벗어난 유일한 출산이며, 교리서 499항이 아드님의 탄생이 어머니의 동정을 훼손하지 않고 축성했다고 가르치는 그 신비입니다. 그리고 아기가 보입니다. 발그레하고 통통한 아기, 장미 봉오리만 한 손, 갓 태어난 새끼 양의 목소리로 우는 아기. 19장에서 마리아가 어루만진 그 어린 양의 울음입니다. 어머니가 입 맞춥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 한복판, 그 아래 작은 심장이 뛰는 그곳에, 우리를 위하여 뛰는 그곳에, 훗날 상처가 자리할 그곳에". 즈카르야서 12장 10절이 그 상처를 예고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할 것이다." 어머니의 첫 입맞춤이 창에 찔릴 자리에 미리 닿았습니다. 21장에서 본 방문 수녀회가 훗날 교회에 전해 줄 성심 신심이, 이 밤 어머니의 입술에서 시작됩니다. 소가 일어나 음매 울고 나귀가 히힝 웁니다. 지난 장의 이사야 1장 3절대로 짐승들이 제 임자를 알아본 것입니다. 마리아가 부릅니다. "요셉, 오세요." 요셉은 벼락 맞은 듯 멈추어 서고, 마리아는 아기를 안고 일어나 그에게로 갑니다. "오세요, 아버지께 예수를 봉헌해요." 그리고 두 통나무 사이에 서서 아기를 들어 올리며 기도합니다. "저 여기 있나이다. 오 하느님, 이분을 위하여 당신께 이 말씀을 아룁니다. 저 여기 당신의 뜻을 이루러 있나이다." 11장에서 어린 마리아가 "보소서, 제가 갑니다" 했던 시편 40편, 히브리서 10장 7절이 아드님께서 세상에 들어오시며 하신 말씀이라 밝힌 그 문장을, 어머니가 아드님을 들어 올리며 아드님 대신 발음합니다. 그러고는 아기를 내밉니다. "받으세요, 요셉." "내가요? 나에게요? 오, 아니오! 나는 자격이 없소!" "당신은 참으로 자격이 있어요. 당신보다 더 자격 있는 이는 없어요." 요셉이 아기를 받아 안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오! 주님! 저의 하느님!" 작은 발에 입 맞추고, 그 발이 찬 것을 느끼자 소와 나귀 사이에 앉아 제 가슴을 아기의 자리로 삼습니다. 그동안 마리아는 궤에서 꺼낸 아마포를 불에 데웁니다. 루카 복음 2장 7절입니다.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포대기는 가난의 표지가 아닙니다. 지혜서 7장에서 솔로몬 임금이 제 탄생을 두고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포대기에 싸여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났다. 임금도 모두 인생을 똑같이 시작한다." 임금들의 임금이 임금들처럼 태어나셨고, 그래서 천사는 목자들에게 그것을 표징으로 줍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요셉이 구유에 건초를 데워 요람을 만들고, 마리아는 제 하늘색 양털 겉옷을 내놓습니다. "저는 조금도 춥지 않아요. 다만 이분이 더는 고통받지 않으시기를!" 책은 적습니다. "구원자의 첫 침상이 마련되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525항이 이 밤을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가정의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소박한 목자들이 그 첫 증인이었으니, "이 가난에서 하늘의 영광이 드러난다." 받아쓰기는 이 탄생의 구원적 뜻을 밝힙니다. "나 마리아는 내 신적 어머니 됨으로 여인을 속량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하와의 죄는 네 갈래로 뻗은 나무였다고 하십니다. 교만과 탐욕과 탐식과 색욕. 17장에서 요한 1서 2장 16절의 세 욕망으로 본 그 뿌리가 여기서 네 가지로 펼쳐집니다. 교만은 밑바닥까지 낮아짐으로 이겼다고 하시며 굴욕의 목록을 주십니다. 요셉의 단죄, 사람들의 수군거림, 가난, 피난, 어머니 노릇을 나무라던 친척들, 골고타, 그리고 아드님의 무덤과 향료를 살 돈조차 없던 굴욕. 탐욕은 "내 아드님을 모신 그 순간부터 그분을 내어놓았다"는 미리 드림으로 이겼습니다. 어머니의 심장에서 자식에게 이어진 영의 줄이 찢기는 그 아픔으로요. 탐식은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것보다 더 캐묻지 않는 절제와 감각을 발밑에 두는 절제로, 색욕은 "정직한 이이던 내 짝을 하나의 천사로" 끌어올리는 정결로 이겼다고 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5장 8절의 약속대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넉넉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여인들에게 하와가 버린 평화를 얻어 준 것은 십자가 발치였다고요. "골고타의 바위는 나의 올리브 산이다." 성탄의 밤에 시작된 여인의 속량이 십자가 아래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이 밤을 다시 살려 낸 사람이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1223년 성탄 전야, 그는 이탈리아 그레치오의 동굴에 살아 있는 소와 나귀와 건초 구유를 두고 마을 사람들을 촛불과 함께 불러 모아 첫 성탄 구유를 만들었고, 그날 밤 미사에서 베들레헴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어린 양처럼 울먹였다고 전기는 전합니다. 오늘 온 세상 성당의 구유는 그 동굴의 후손입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입맞춤입니다. 십자고상 앞에 가시거든 얼굴이 아니라 옆구리의 상처에 입 맞추십시오. 어머니의 첫 입맞춤이 닿은 자리입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굴욕 하나를 성모님의 목록 곁에 놓아 드리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한밤의 침묵 속에 말씀이 뛰어내리셨습니다. 이 가난에서 하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30장, 목자들에게 알림, 사람이 되신 말씀의 첫 흠숭자들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