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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왜 법에 없는 벌을 내렸을까?ㅣ경국대전을 완성한 성종, 그가 어우동을 죽여야만 했던 충격적인 이유

깨알역사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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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왜 법에 없는 벌을 내렸을까?ㅣ경국대전을 완성한 성종, 그가 어우동을 죽여야만 했던 충격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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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알역사책방은 조선왕조실록과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야사를 더해 조선왕조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기록에 충실하되, 기록이 비어 있는 자리는 앞뒤 이야기를 이어 조선의 역사를 재미있게 담았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긴 이야기를 인물별로 한 회씩 나누어 쉽게 풀었습니다. 어느 편부터 보셔도 되지만, 1화부터 보시면 사람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입니다. ▶ 조선시대 인물 이야기 1화 한명회 — 수양대군의 남자 2화 단종 — 청령포의 눈물,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나 3화 세조 — 수양대군은 왜 임금이 되어야 했나 4화 세종대왕 — 비극의 시작 5화 태조 이성계 — 왕을 키운 사람은 노비였다 6화 조선 왕비 잔혹사 — 왕비를 죽인 것은 남편이 아니었다 7화 태종 이방원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8화 성종 — 왜 어우동을 죽여야 했나 (이 영상) (채널 재생목록 「조선시대 인물 이야기 몰아보기」에서 순서대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주의 — 너무 재미있어서 잠드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성종과 어우동 이야기. 예종이 죽은 날 열세 살에 임금이 된 성종과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 경국대전과 홍문관, 법에 없는 벌을 받은 어우동, 폐비 윤씨와 인수대비, 형 월산대군, 그리고 아들 연산군에게 남긴 것까지 — 성종실록·선조실록의 기록으로 따라가는 조선역사 한국사 역사이야기입니다. 🎙️ 이번 이야기 요약 1. 1480년, 어우동이 의금부에 잡혀갑니다. 법에 정한 벌은 곤장이나 귀양이었는데 임금은 강상죄로 다스리라 했고, 신하들이 여러 날 반대했습니다. 같이 붙잡힌 남자들은 대부분 풀려났습니다. 2. 1469년 11월 28일, 예종이 숨을 거둔 그날 궁 밖에서 불려 온 열세 살 아이가 곤룡포를 입었습니다. 위로 형이 있었고, 죽은 임금에게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3. 1492년, 대비전에서 한글로 쓴 글이 내려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완성한 법전을 들어 아들을 꾸짖었고, 서른여섯 아들은 그 글을 물리쳤습니다. 4. 1593년 4월, 왜군이 파헤친 무덤을 살피고 온 관리가 보고합니다. 「선릉은 광중이 이미 비어 있었다.」 지금 선릉역 앞 그 봉분 속에 임금의 몸은 없습니다. 📚 기록 원칙 정사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사·후대 문집은 「전해집니다」로 구분해 말씀드립니다. 현덕왕후의 원혼 이야기, 세조가 어린 손자를 두고 한 말, 인수대비를 부른 「폭빈」, 제안대군이 어리석은 척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지는 이야기이며 영상 안에서 그렇게 밝혔습니다. 틀린 곳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 주세요. 확인 후 고정댓글에 정리해 두겠습니다. 🖼️ 제작 안내 본 영상의 장면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재구성한 연출입니다. 성종의 어진은 전하지 않아, 화면 속 얼굴은 실제 모습이 아닙니다. 첫 장면(콜드오픈)의 대사는 기록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창작입니다. 📖 참고 기록 성종실록 · 예종실록 · 연산군일기 · 선조실록 · 선조수정실록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DB · 우리역사넷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유산청 조선왕릉(선릉) 🔗 다음 편 예고 — 9화 연산군. 아버지의 무덤 글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본 스무 살 임금이 그 뒤 열한 해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실록이 아니라 일기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남은 임금의 이야기입니다. #역사 #한국사 #역사이야기 #조선역사 #연산군 #성종 #정희왕후 #어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