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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남은 호랑이의 흔적, 그리고 부여의 역린|홀본의 비밀 최종화(Part 6)

정답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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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남은 호랑이의 흔적, 그리고 부여의 역린|홀본의 비밀 최종화(Par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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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본의 비밀》 6부작을 마치며 영상에 다 담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 PART 6은 영상의 흐름과 러닝타임을 위해 상당한 내용을 압축했습니다. 그래서 영상에서는 각각의 기록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고, 그 기록들이 왜 하나의 큰 질문으로 연결되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예왕의 인장, 예성, 망인이라 자칭한 부여왕, 단군신화의 호랑이, 고조선의 멸망, 해모수와 추모, 그리고 마지막으로 홀본이 왜 부여의 ‘역린’이었을 가능성이 있는지 그 흐름을 한 번에 정리해보려 합니다. 1. 부여의 땅에는 부여보다 오래된 왕권의 기억이 남아 있다 『삼국지』 부여 기록에는 매우 이상한 표현들이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濊王之印 예왕지인 예왕의 인장 濊城 예성 예의 옛 성 蓋本濊貊之地 개본예맥지지 대체로 본래 예맥의 땅 현재의 왕은 분명 부여왕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 안에는 ‘예왕’이라는 더 오래된 왕의 흔적이 있고, ‘예성’이라는 오래된 정치공간이 있으며, 그 땅 자체를 본래 ‘예맥의 땅’이라고 설명합니다. 而夫餘王其中 自謂亡人 이부여왕기중 자위망인 그런데 부여왕은 그 가운데 있으면서 스스로를 망인이라 일컬었다. 亡人은 자신의 본래 정치공간을 떠난 사람, 도망하거나 이주해 온 사람이라는 의미권으로도 사용됩니다. 왜 자기 나라 한가운데 있는 부여왕이 자신을 ‘밖에서 들어온 사람’처럼 기억했을까요? “예왕은 고조선왕이었다”, “예왕의 인장은 고조선왕의 인장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맥계의 기존 정치세계가 먼저 존재했고, 그 위에 외부에서 이동한 새로운 왕통이 결합하면서 부여라는 새로운 왕권질서가 형성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2. 단군신화에서 호랑이는 왜 끝내 사라지지 않았을까 사실 단군의 탄생만 설명하려면 호랑이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환웅이 내려오고, 곰이 사람이 되고, 웅녀와 환웅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나면 이야기는 완성됩니다. 그런데 신화는 굳이 호랑이를 기억합니다. 一熊一虎 同穴而居 일웅일호 동혈이거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았다. 곰과 호랑이는 같은 공간, 같은 소망, 같은 조건, 같은 시험에서 출발합니다. 결과에서만 갈립니다. 곰은 새로운 질서 안으로 들어가고, 호랑이는 그 질서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삼국지』 예조에는 又祭虎以爲神 우제호이위신 또 호랑이에게 제사하여 신으로 삼았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단군신화의 호랑이 = 역사시대의 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여의 땅 아래에 예왕·예성·예맥이라는 오래된 정치기억이 남아 있고, 역사시대의 예에게 호랑이 제의가 존재하며, 단군신화에서는 호랑이가 곰과 동등한 위치에서 출발했다가 새로운 질서에서 이탈한다는 구조가 남아 있다는 점은 함께 비교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3. 고조선의 최후는 한 번의 전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기원전 108년 고조선 왕조의 붕괴에서 한 무제의 군사적 침공은 분명 결정적인 외부 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왕검성 포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고조선 내부에서도 항전과 협상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났고, 마지막에 우거왕을 살해한 사람도 한나라 장수가 아니라 고조선 내부의 니계상 삼이었습니다. 우거가 죽은 뒤에도 성기의 저항은 이어집니다. 따라서 고조선의 최후는 외부의 군사적 압박, 내부 정치세력의 분열, 지역세력의 이탈과 재편 등이 복합적으로 진행된 끝에 이루어진 붕괴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고조선의 중앙왕조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정치세계에 속해 있던 모든 세력과 왕권·제의·혈통·건국기억까지 동시에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4.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부여는 같은 시대에 보고 있었다 부여는 고조선 멸망 뒤에 갑자기 나타난 나라가 아닙니다. 고조선과 부여는 상당 기간 같은 시대에 존재했습니다. ‘부여가 고조선의 멸망을 지켜보았다’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사료에 기록된 문장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조선 왕조가 무너지는 동안 부여 역시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고조선이라는 오래된 중심이 사라진 뒤, 부여는 동북방 광역질서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됩니다. 5. 고조선 멸망에서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다시 등장하는 천손왕권 후대 전승의 연대를 그대로 놓고 보면 고조선 멸망은 기원전 108년, 해모수의 북부여 건국은 기원전 59년, 추모의 홀본 건국은 기원전 37년입니다. 물론 이 연대들은 동시대 사료로 확정된 절대연대가 아니라 후대 건국전승 속 연대입니다. 하지만 왜 후대의 왕실 기억은 고조선 멸망에서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천손왕권이 출현하는 것으로 시간을 배치했을까요? 해모수는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추모는 天帝之子(천제지자, 천제의 아들), 또 다른 기록에서는 日月之子(일월지자, 해와 달의 아들)로 기억됩니다. 시대도 다르고 기록의 성격도 다르지만 왕권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방향은 반복됩니다. 하늘. 태양. 천제. 천손. 그리고 이 기억이 계속 향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홀본입니다. 6. 왜 왕권의 변곡점은 계속 홀본으로 돌아오는가 홀본은 추모가 처음 발견한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추모 이전에도 송양은 스스로 누대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추모는 그곳에서 토착세력과 결합해 새로운 왕권을 세웁니다. 그런데 유리가 나타나자 왕통은 바뀌고, 소서노계는 남하하며, 수도도 홀본을 떠납니다. 그런데 차기왕 해명은 새 수도가 아니라 옛 도읍 홀본에 남습니다. 황룡국왕이 보낸 강한 활도 현재 왕 유리가 아니라 홀본의 차기왕 해명에게 향합니다. 유리는 대소의 볼모 요구에는 침공 위험까지 감수했지만, 황룡국왕과 얽힌 해명 문제에서는 자신의 태자를 대신 죽여달라고 요청하고, 결국 해명에게 자결을 명합니다. 같은 유리왕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대칭적입니다. 7. 그렇다면 부여는 정말 하나의 왕국에 불과했을까 PART 5에서 보았듯 부여에는 왕이 있었지만, 동시에 수천 호를 거느릴 수 있는 제가와 여러 지역 권력 중심도 존재했습니다. 후대에는 북부여·동부여·홀본부여·남부여라는 이름이 여러 왕실의 출자와 정통성을 설명하는 데 반복되고, 고구려와 백제도 자신의 뿌리를 부여에 연결합니다. 따라서 ‘부여’를 하나의 영토국가 이름만으로 보기보다, 여러 왕계와 지역권력이 연결되고 공통의 출자기억과 신성한 정통성이 작동했던 더 넓은 정치질서로 볼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편의상 이를 ‘부여세계’, 혹은 ‘부여제국적 세계’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사료에 실제로 ‘부여제국’이라는 공식 국호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구조복원 개념입니다. 8. 그렇다면 부여가 정말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부여가 여러 왕계와 지역세력을 포괄하는 더 큰 정치질서였다면, 가장 경계한 것은 영토 몇 곳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오래 축적된 신성한 정통성을 품은 홀본에서 또 하나의 천손왕권이 탄생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료에서 왕을 움직이는 上帝(상제), 새 왕권의 성립 직전에 나타나는 黃龍(황룡), 홀본의 차기왕 문제에 개입하는 黃龍國王(황룡국왕)은 각각 전혀 관계없는 전승이라기보다 왕권의 이동·성립·후계라는 민감한 순간에 등장하는 상위 권위의 기억일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상제와 황룡과 황룡국왕이 같은 인물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보다 기능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부여가 두려워했던 것은 추모 한 사람도, 해명 한 사람도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홀본이라는 공간이었습니다. 홀본은 새 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 기존 부여질서와 별개의 천손왕권을 다시 잉태할 수 있는 정치적·신성적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여가 경계해야 했던 것은 홀본을 차지한 어느 한 왕이 아니라, 그곳에서 계속 새로운 왕권이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홀본이 부여의 ‘역린’이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홀본의 비밀》 이후 《홀본의 비밀》 6부작은 우선 홀본의 정치적·왕권적 상징성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홀본과 고조선은 실제로 어떤 관계였는가, 실제 홀본권은 어느 범위였는가, 그리고 왜 이 지역이 지정학적으로도 그렇게 매력적인 공간이었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추후 기회가 된다면 《홀본의 비밀 외전》 ― 고조선과 홀본, 그리고 홀본의 지정학에서 더 깊게 다뤄보고 싶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기록은 여기에서 멈춥니다. 그러나, 기록의 빈틈이 던진 질문까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6부작을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홀본을 어떻게 보셨나요? 가장 설명력이 높다고 느낀 가설과 가장 약하다고 느낀 연결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홀본의비밀 #고구려 #부여 #고조선 #단군신화 #주몽 #유리왕 #역사탐구 #정답너머 #역사상식 #역사탐구 #역사이야기 #역사다큐 #역사강의 #역사의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