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노국의 멸망 | 고구려 건국 EP.1
무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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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노국의 멸망 | 고구려 건국 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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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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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소개
북부여의 제후국이었던 순노국은 한때 옥저와 동해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옥저와의 전쟁, 천하대란, 북갈의 남하를 거치며 국세가 쇠퇴하였고, 기원전 42년 순노왕 오만이 말갈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결국 일곱 소국으로 분열되어 멸망합니다. 순노의 중신들은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추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는 훗날 추모가 동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건국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본 영상은 남당 필사본의 『추모경』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남당 필사본은 일제강점기 남당 박창화 선생이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필사해 온 것으로 전해지는 삼국의 역사서입니다. 이 책의 진위 여부를 두고는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화랑세기』 필사본을 둘러싼 논쟁을 들 수 있습니다. 남당 필사본은 필사본이라는 한계로 학계의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료의 부족으로 많은 의문이 제기되는 우리 고대사를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남당 필사본을 하나의 길잡이로 삼아 고구려 역사 속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순노국
옥두진(옥류화의 아버지)에게는 누이 옥인(屋因)이 있었다. 옥인은 옥문(屋文)의 딸이었다. 북부여(北夫餘)는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으나 3후(后) 5비(妃)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즉, 황후(皇后)·부후(副后)·제3후(第三后)의 세 후와 다섯 비를 두는 제도였다. 옥인은 처음에는 법제(法帝)의 비(妃)였으나, 기원전 85년 공주 해신을 낳으며 부후(副后)로 승차하였고, 기원전 76년 수제(漱帝, 해모수)가 즉위하자 제3후(第三后)에 올랐다. 옥인은 오산(奧山)과의 사이에서 오릉(奧陵), 호진(好辰), 오천(奧川), 호인(好人, 옥류화의 어머니, BC 94~BC 24) 등을 낳았다. 이 가운데 오천은 기원전 83년 수제의 장녀 해황(解凰)과 혼인하여 순노후(順奴侯)로 봉해졌다. 당시 순노(順奴)의 영토는 매우 광대하여 옥저(沃沮)와 동해(東海, 동부여의 옛 이름)의 대부분이 순노에 속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69년 옥저와의 전쟁과 기원전 68년 천하대란을 거치며 국세가 크게 약화되었고, 북갈(北鞨)이 남하하면서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이후 기원전 63년, 순노후였던 오천은 스스로 순노왕을 칭하였다. 그는 해황과의 사이에서 오만(奧万, BC 83~BC 42), 오건(奧犍, BC 79~BC 23), 오춘(奧春, BC 72~?) 등을 두었으며, 이 가운데 오만은 순노를, 오건은 청하를 각각 통치하였다. 이처럼 순노와 청하는 옥두진과 혈연으로 이어진 국가였다. 기원전 54년 말갈(末曷)이 순노를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친인척 국가인 순노의 위기를 옥두진은 좌시하지 않았고, 직접 군을 이끌고 나아가 이를 구원하였다. 같은 시기, 비류국왕 송양이 청하의 오건을 공격하여 고국원(故國原)을 차지하였다. 이 또한 두고 볼 수 없었던 옥두진은 기원전 52년 고국원을 되찾고자 송양을 정벌하였으나 끝내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 고국원은 훗날 추모가 되찾아 '다물'이라 불리게 된다. 기원전 44년 말갈이 다시 순노를 공격하자 순노왕 오만(옥인의 손자)은 모둔으로 몸을 피하였고, 오건은 사신을 보내 추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과거 외조부 옥두진이 그러하였듯, 추모 역시 혈연으로 이어진 순노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추모는 순노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금와가 이를 허락하지 않아 결국 의분만 쌓게 되었다. 기원전 43년, 난파는 추모의 여성 편력을 문제 삼아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였다. 이에 격분한 추모는 난파를 죽이고 순노로 떠나려 하였으나, 유화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 이듬해인 기원전 42년, 오만이 말갈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복수를 다짐하던 왕비 화잠마저 말갈 추장 적득에게 사로잡히자 순노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결국 순노는 일곱 개의 소국으로 분열되며 멸망하였고, 나라의 재건을 염원하던 순노의 중신들은 추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로써 추모는 동부여를 떠나야 한다는 결심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순노 七國
갈하(羯河), 구여향(九如鄕), 모둔(毛屯), 엄표(淹淲) , 한빈(汗濱), 하남(河南) 양하(兩河)
옥인(屋因)
옥두진의 누이. 오산(奧山)과의 사이에서 오릉(奧陵), 호진(好辰), 오천(奧川), 호인(好人) 등을 낳았다.
오천(奧川)
기원전 83년, 수제의 장녀 해황(解凰)과 결혼하여 순노후(順奴侯)로 봉해졌다. 당시 순노(順奴)의 영토는 매우 광대하여, 옥저(沃沮)와 동해(東海, 동부여의 옛 이름)의 대부분이 순노에 속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69년 옥저와의 전쟁과 기원전 68년 천하대란을 거치며 국세가 크게 약화되었고, 북갈(北鞨)의 남하로 인해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기원전 63년, 순노후였던 오천은 스스로 순노왕을 칭하였다. 그는 해황과의 사이에서 오만(奧万, BC 83~BC 42), 오건(奧犍, BC 79~BC 23), 오춘(奧春, BC 72~?) 등을 두었는데, 이 가운데 오만은 순노를, 오건은 청하를 각각 통치하게 된다.
오만(奧万, BC 83~BC 42)
순노왕 오천의 아들로, 순노왕을 계승하였다. 기원전 42년 말갈과의 싸움에서 전사하였고, 그의 비 화잠마저 말갈 추장 적득에게 사로잡혔다. 순노국은 7개의 소국으로 분리되었으며, 나라 재건을 위해 순노의 중신들이 추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추모는 이를 기회로 삼아 동부여를 탈출해 순노로 향하였다.
오건(奧犍, BC 79~BC 23)
순노왕 오천의 아들로, 청하와 순노 등을 다스렸다. 사람됨이 충직하고 남을 아꼈으며,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남과 공을 다투지 않았다.
화잠(禾岑, BC 82 ~ BC 25)
추모의 누이 란의 딸. 순노왕 오만의 비. 오만이 말갈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화잠은 남편의 원수를 갚고자 말갈과 싸웠으나 패하여 말갈 추장 적득에게 사로잡혔다. 이로 말미암아 순노국은 일곱 소국으로 나뉘었다. 갈하 전투가 끝난 뒤 부분노의 처가 되어 다섯 아들을 낳았으며, 기원전 25년 쉰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옥훤화(屋萱花, BC 71 ~ BC 22)
동명훤황후. 유화의 여동생이다. 기원전 40년, 추모와 함께 엄리수를 건너 순노국으로 향하였다. 물이 불어나 건너기 어려워지자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몸을 희생함으로써,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게 하였다. 훤황후는 추모의 어린 시절부터 그를 보필하였으며, 황후가 된 뒤에도 후궁들을 너그럽게 거느리고 자녀를 훌륭히 길러, 고구려 건국 초기의 중요한 조력자로 이름을 남겼다.
모둔곡
모둔곡은 순노 내부의 땅으로, 순노왕 오만이 말갈을 피해 밀도를 둔 곳이었다.
모둔(毛屯) : 순노국의 밀도.
밀도(密都) : 전란과 같은 국가적 위기에 대비해 따로 마련해 두었던 비상용 도성.
모둔곡 삼현
재사, 무골, 묵거는 모두 현인이었다. 이들은 순노국 모둔곡의 세 촌장이었다.
1. 마의촌 극씨 재사공 : 사람의 길흉을 점칠 수 있었으며, 백성들에게 농사와 양잠에 힘쓸 것을 권하였다. 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니 촌민들이 그를 신처럼 받들었다.
2. 납의촌 중실 무골공 : 호협하고 의기를 중히 여겨 타인의 원수를 갚아주었으며, 용맹하여 무예에 정통하니 인근 마을이 모두 복종하여 감히 도적질을 하지 못하였다.
3. 수조촌 소실 묵거공 : 약초를 캐어 질병을 고치고 배를 만들어 홍수를 피하게 하니, 이로 인해 덕망이 높았다.
4호(四豪)
오이(烏伊 BC 65 ~ AD 18), 마리(摩离 BC 63~ AD 21), 협보(陜父 BC 50 ~ AD ?), 부분노(扶芬奴 ?)
동부여 사호 가운데 한 사람인 부분노는 모친 대수(大嫂)가 적곡 출신으로, 노란 머리와 흰 살결을 지닌 말갈계(황두민) 인물로 추정된다. 협보 또한 말갈계 출신으로 전해지는데, 훗날 유리왕의 미움을 받아 태보의 직에서 파면된 뒤 고구려를 떠나 신라로 탈출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인 작 태자가 신라의 탈해왕으로 즉위하였다. 한편 오이와 마리는 각각 황룡왕과 비리왕에 올랐으나, 말갈계로 여겨지는 부분노와 협보는 끝내 왕으로 봉해지지 않았다.
12신장(十二神將)
안황(眼黃) : 삼백 근의 철퇴를 휘두르는 자
수다(須多) : 쇠를 끊을 수 있는 자
몽칠(夢七) : 천 리를 달리는 자
백미성(白眉成) : 큰 못과 거대한 집을 뛰어넘는 자
갈마고동(葛馬古銅) : 노수(弩手)
지개(支介), 관항죽이(冠項竹伊) : 석촉수(石鏃手)
월씨(月氏), 호고(鎬股) : 창수(槍手)
소수예만(素守乂万) : 궁수(弓手)
오취(吳翠), 임운상(林雲霜) : 검수(劒手)
추모경연의
말갈의 난을 당하자 이 삼현이 합심하여 모둔을 지키며 오만을 받들어 온 후에, 그 재주가 부족함을 알게 되어 추모를 맞이하고자 하였으나 오만이 듣지 않고 제멋대로 출전하여 전사하였다. 오만의 처 화잠 또한 이 삼현의 간언을 듣지 않고 패한 후에 오건의 형제들과 함께 순노의 선후지책을 강구할 때, 단공과 연락하여 추모를 맞이하기로 의논이 일치하였으나 맞이하는 방법이 정해지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 와중에 이날 말갈이 구여를 침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구원할 방법을 산 위에서 회의하는데, 홀연히 무지개가 북쪽에서 땅에 꽂히며 붉은 빛이 큰 불길처럼 보술구 가에 오색 빛이 영롱하게 서기가 상천하니 그 징조가 길조인지 흉조인지 몰랐다. 삼현들이 크게 놀라 높은 곳에 올라 한참을 말없이 멀리 바라보다 이는 분명 성인의 강림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