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TV] 4K 피의 군주가 마지막까지 곁에 둔 여인 | 태종과 신빈 신씨 #조선왕조실록 #조선역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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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TV] 4K 피의 군주가 마지막까지 곁에 둔 여인 | 태종과 신빈 신씨 #조선왕조실록 #조선역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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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3대 왕 태종 이방원은 왕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형제를 베고, 처남 넷을 죽이고, 함께 목숨을 걸었던 아내와도 등을 졌습니다.
그런 임금이 죽기 석 달 전에 한 일은,
왕비의 세숫물을 데우던 몸종의 자리를 올려 준 것이었습니다.
「아이도 많이 낳았고, 내 병도 오래 구호하였다.」 — 태종실록
그 여인의 이름은 신빈 신씨.
스물다섯 해 동안 두 아들과 일곱 딸을 낳았고, 임금의 병상을 지켰으며,
임금이 떠난 열흘 뒤 허락 없이 머리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남은 열세 해를, 그의 이름을 금으로 적으며 살았습니다.
📖 사료 및 출처
· 『정종실록』 정종 2년(1400) 1월 28일
2차 왕자의 난 때 정안공의 말이 홀로 돌아오자 싸움터로 나가려는 원경왕후를 시녀들이 붙잡아 말린 기록
· 『태종실록』 태종 14년(1414) 1월 13일
궁인에게서 난 아들들을 정윤으로 삼고, 함녕군의 어머니 신씨를 신녕옹주로 봉한 기록
· 『태종실록』 태종 15년(1415) 12월 15일·12월 21일
효빈 김씨가 원경왕후의 가비였다는 기록, 그리고 처남들을 국문하며 경녕군 모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를 물은 태종의 말
· 『태종실록』 태종 17년(1417) 9월 2일
이속 사건. 이속의 말과 태종의 대답, 그리고 처벌의 내용
· 『세종실록』 세종 4년(1422) 2월 20일
신녕옹주를 신녕궁주로 올리며 태종이 직접 밝힌 이유
· 『세종실록』 세종 4년(1422) 5월 10일
태종 승하
· 『세종실록』 세종 4년(1422) 5월 20일
신녕궁주와 의빈 권씨가 머리를 깎은 일, 세종이 금했으나 궁인들이 따른 기록
· 『세종실록』 세종 4년(1422) 이후
신녕궁주가 항상 내정을 맡았다는 기록. 금가루로 법화경을 쓰게 해 달라는 청과 세종의 허락
· 『세종실록』 세종 5년(1423)
문소전 불당에서 금으로 불경을 쓰게 한 기록
· 『세종실록』 세종 17년(1435) 2월 2일
신씨 졸기. 세종이 예에 맞게 장사 지내도록 하고 조문·제사·염습을 관에서 맡게 한 조치
· 『고종실록』 고종 9년(1872)
신빈(愼嬪) 추증
· 『선원계보기략』
정신옹주를 비롯한 자녀의 계통. 2남 7녀의 이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빈 신씨」, 「태종」, 「원경왕후」
※ 신빈(愼嬪)은 그녀가 죽고 사백 년이 넘어 붙은 칭호입니다. 살아서 불린 이름은 신녕옹주와 신녕궁주였습니다.
🎬 제작 과정
· 대본: 『태종실록』·『정종실록』·『세종실록』·『선원계보기략』을 직접 대조해 구성했습니다. 사건과 날짜, 인물 관계와 자녀의 수는 사료를 따랐습니다.
· 대사: 이 영상의 대사는 대부분 창작입니다. 신빈 신씨는 남긴 글도, 기록된 말도 한 줄이 없습니다.
사료에 남은 말 — 신녕궁주 승격 때 태종의 말, 이속의 말과 그에 대한 태종의 대답, 신녕옹주 봉작 왕명, 세종이 신씨의 장례를 예에 맞게 하라 한 조치
창작한 부분 — 신씨의 모든 대사, 원경왕후와 신씨가 주고받는 말, 병상에서 태종과 신씨가 나눈 대화, 삭발하던 밤 의빈 권씨와의 대화, 궁인·상궁·산파의 대사. 기록이 남기지 않은 자리를 인물의 처지와 정황에 맞춰 이야기로 옮긴 것입니다.
·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 음성·편집: TTS 음성과 자체 편집으로 제작했습니다.
재밌는한국역사TV는 사료에 남은 조선 왕실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로 전합니다.
이름도 생년도 남지 않은 이 여인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댓글로 생각을 들려주세요.
#신빈신씨 #태종 #이방원 #원경왕후 #조선왕조실록 #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