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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과 궁예, 왕건 천년전 세 임금이 마주 앉았다면, 통역이 필요했을까

의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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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과 궁예, 왕건 천년전 세 임금이 마주 앉았다면, 통역이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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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훤과 궁예, 왕건은 서로 말이 통했을까? "신라 말은 백제를 기다린 다음에야 통한다." 천오백 년 전 중국 사서에 적힌 이 한 줄에서 시작합니다. 경상도 산골에서 태어난 견훤, 경주 왕족으로 태어나 강원도 절에서 자란 궁예, 황해도 항구에서 바다 장사를 하던 집안의 왕건. 이 세 사람은 삼십 년 넘게 서로를 죽이려 했습니다. 편지를 주고받고, 사신을 보내고, 인질을 교환하고, 마지막에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죠. 그런데 그 자리에 통역이 있었을까요? 🤔 📌 이 영상에서 다루는 것 0:00 중국 사서에 적힌 한 줄 01:46 '말이 다르다'는 게 어느 정도 다른 걸까 04:01 521년, 양나라 궁궐에서 벌어진 일 07:47 세 사람이 평생 들은 말의 지도 11:54 궁예는 왜 나라 이름을 세 번이나 바꿨나 17:57 927년 그 편지, 사실 견훤이 쓴 게 아니었다 20:25 통역 기관은 삼백사십 년 뒤에야 생겼다 24:08 송나라 사람이 받아적은 고려 말 350개 📖 참고문헌 1차 사료 김부식, 『삼국사기』 권50 열전 제10 「견훤」·「궁예」 — 927년 견훤과 왕건의 왕복 서신 전문, 궁예의 출가와 연호 변천, 935년 견훤의 고려 귀부 기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db.history.go.kr/ancient 김부식, 『삼국사기』 권46 열전 제6 「최승우」 — 견훤을 대신해 격서를 지었다는 기록. 김부식, 『삼국사기』 권34~37 「지리지」 — 신라 9주 5소경 체제와 지방 행정 구역. 『양서(梁書)』 권54 열전 제48 제이(諸夷) 「백제」 —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지금 언어와 복장이 대체로 고구려와 같다)". 『양서』 권54 열전 제48 제이 「신라」 — "語言待百濟而後通焉(말은 백제를 기다린 뒤에야 통한다)", 521년 백제 사신을 따라 처음 사신을 보낸 기록, 건모라·탁평·읍륵·유자례·위해·가반 등 신라 어휘 음차 표기. 『주서(周書)』 권49 이역전(異域傳) 상 「백제」 — 왕을 귀족은 어라하(於羅瑕), 백성은 건길지(鞬吉支)라 불렀다는 기록. 정인지 외, 『고려사』 권1 세가 태조 — 왕건의 즉위와 후삼국 통일 과정, 935년 견훤 귀부와 상부(尙父) 칭호. 정인지 외, 『고려사』 권76 백관지 「통문관」 — 충렬왕 2년(1276) 통문관 설치 기록. 혁련정, 『균여전(均如傳)』 「역가현덕분자(譯歌現德分者)」 — 최행귀가 균여의 향가 11수를 한시로 옮기며 붙인 서문. 967년 무렵. 손목, 『계림유사(鷄林類事)』 — 1103~1104년경 송나라 사신 서장관으로 고려에 체류하며 기록한 고려어 어휘 약 350항. 天曰漢捺(하늘은 한날), 風曰孛纜(바람은 불람), 雲曰屈林(구름은 굴림) 등. 사전 및 연구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계림유사」 「어라하」 「통문관」 「세달사」 「궁예」 「후백제」 「후삼국시대」 「대견훤기고려왕서」 「삼구육명」 「아자개」 — encykorea.aks.ac.kr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중 '견훤의 출신과 군사적 기반', '해상세력 출신의 호족' — contents.history.go.kr 연합뉴스, 「궁예의 출가지 영월 흥교사터서 신라말 사찰터」, 2012년 12월 14일 — 세달사 위치 비정 관련 발굴 조사 보도. yna.co.kr #후삼국시대 #견훤 #궁예 #왕건 #한국사 #후삼국시대세사람 #견훤궁예왕건관계 #삼국은서로말이통했을까 #고대한국어의비밀 #신라어백제어고구려어 #계림유사고려말 #궁예가바꾼나라이름 #927년견훤의편지 #한국어의역사이야기 #역사다큐멘터리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