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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광교산에서 이기고도 왜 왕을 구하지 못했나

역사한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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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광교산에서 이기고도 왜 왕을 구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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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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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인조를 구하러 북상하던 김준룡의 전라도 근왕병은 광교산에서 청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승리한 뒤에도 이들은 남한산성으로 계속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전투에서는 이겼는데, 왜 왕에게 닿지 못했을까요? 1636년 겨울, 전라도에서는 약 6천 명의 근왕병이 모였고 김준룡은 그 가운데 약 2천 명을 이끌고 먼저 북상했습니다. 한겨울 행군과 진영 구축을 거쳐 광교산에서 청군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승리 뒤 화살과 식량이 부족해지자 김준룡은 군사들을 수원 쪽으로 물렸습니다. 뒤따르던 이시방은 이를 김준룡 부대가 싸움에서 져서 물러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자신의 군사들도 남쪽으로 돌렸고, 이후 두 부대는 서로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광교산의 승리가 왜 남한산성 구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전라도 근왕병의 북상부터 전투와 철수, 그리고 병자호란의 결말까지 차근차근 따라가 봅니다. 하루의 틈마다 한 칸씩, 역사한칸이 차분히 들려드립니다. ───────────────── 📌 타임라인 00:00 광교산에 도착한 전라도 군사들 00:31 남한산성 포위와 전라도 근왕병 01:29 평소 훈련받던 속오군 02:51 한겨울 북상을 위한 준비 04:15 광교산에 세운 전투 진영 05:40 청군의 공격과 광교산 승리 07:51 승리 뒤 보급난과 패전 오인 09:01 끝내 풀리지 않은 남한산성 11:08 오늘의 한 칸을 마치며 ───────────────── 🔔 구독과 알림 설정으로 역사 한 칸의 흐름을 놓치지 마세요. 본 영상의 일부는 AI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 비즈니스 및 협업 문의: lscozworks@gmail.com #병자호란 #광교산전투 #근왕병 #김준룡 #이시방 #인조 #남한산성 #속오군 #조선군 #청군 #삼전도 #소현세자 #봉림대군 #조선시대 #한국사 #전쟁사 #군사사 #역사 #역사이야기 #역사한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