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ейти к содержимому

불효자는 웁니다 이영진 노래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1940 진방남)7080 삼태기 메들리이영진LIVE카페(서울특별시영등포구디지털로407(대림동)K-ARIRANG李咏陳歌謠博物館

삼태기 이영진 카페

0:00 / 0:00

불효자는 웁니다 이영진 노래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1940 진방남)7080 삼태기 메들리이영진LIVE카페(서울특별시영등포구디지털로407(대림동)K-ARIRANG李咏陳歌謠博物館

6 просмотров · 8 дн. назад
삼태기 이영진 카페
35 подписчиков
6 просмотров · 8 дн. назад
불효자는 웁니다 (1940 진방남) 이영진 노래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1절]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2절]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3절] 북망산 가시는 길 그리도 급하셔서 이국의 우는 자식 내 몰라라 가셨나요 그리워라 어머님을 끝끝내 못 뵈옵고 산소에 엎푸러져 한 없이 웁니다 진방남 (본명 朴昌吾) 1917년 8월 1일 경상남도 마산부 (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생 1939년 태평레코드社 콩쿠르 대회 입상 가수 데뷔 1940년 진방남의 데뷔곡은 "불효자는 웁니다" 2012년 3월 26일 (향년 94세) 별세 이 곡은 1940년에 발표되었으며, 2차 중일전쟁의 인력 충원과 만주이주정책의 가속화로 민족의 타국 유출이 심화되는 현실과 맞아 떨어져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 노래는 진방남이 태평레코드 간판 가수로 떠올랐을 때의 히트곡으로, 해외 순회공연에서도 대단한 갈채를 받았습니다. 예명 : 반야월(半夜月), 진방남(秦芳男), 추미림(秋美林), 박남포(朴南蒲), 남궁려(南宮麗),금동선(琴桐線), 고향초(高香草), 옥단춘(玉丹春), 백구몽(白鷗夢) , 허구(許久) 진방남 반야월 프로필 본명 히트곡 진방남의 본명은 박창오이고 예명은 유명한 작사가 반야월입니다. 진방남은 1939년에 노래콩쿨에서 1위를 하면서 가수데뷔를 하게 되었고 이 곡을 녹음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갔으나 마침 어머님의 부고를 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그 절절한 심정이 국민들의 마음을 울려서 이 곡은 현재까지도 가요무대 등에서 자주 불리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노래는 3절까지 있고 내용은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면서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1. 개요 반야월(半夜月, 1917년 8월 1일 ~ 2012년 3월 26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작사가이며 가수이다. 가수로 활동하던 때에는 진방남(秦芳男)이라는 예명을 사용키도 했다 그의 예명들 중에서 반야월은 그의 평생의 아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2. 상세 출생지는 경상남도 마산이며, 본명은 박창오(朴昌吾), 본관은 밀양이다. 추미림(秋美林), 박남포(朴南蒲), 남궁려(南宮麗), 금동선(琴桐線), 허구(許久), 고향초(高香草), 옥단춘(玉丹春), 백구몽(白鷗夢) 등의 여러 예명도 사용했다. 경상남도 마산시 합포구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충북 청주에서 양복집을 하던 숙부를 찾아가 양복일을 배웠다. 청주 일대에서 ‘노래하는 양복쟁이’로 통하다 청주 지역 콩쿠르를 휩쓸고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가 주최하는 전국 콩쿠르대회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발표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이 대표작이다. 이후 남대문악극단을 조직해 《산홍아 너만 가고》, 《마도로스 박》 등의 악극을 제작했고, 방송극도 집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더불어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노랫말을 많이 작사했다.[2] 〈넋두리 20년〉을 시작으로 자신이 불러 히트한 〈꽃마차〉, 그리고 〈단장의 미아리고개〉, 〈유정천리〉 , 〈울고 넘는 박달재〉 , 〈만리포 사랑〉, 〈벽오동 심은 뜻은〉, 〈비 내리는 삼랑진〉, 〈아빠의 청춘〉,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산유화〉, 〈외나무다리〉, 〈소양강처녀〉 등이 잘 알려진 곡이나, 작사한 노래만 수천 편이 넘는다. '소양강처녀'를 부른 가수는 김태희이며 작곡자는 이호이다. 19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 196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1974년 한국가요반세기작가동지회 등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66년 국제가요대상 작사상, 1967년 공보부장관 감사상을 받았고, 1991년에는 문화훈장 국민장을 서훈 받았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노래를 작사하고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작사가이면서 가장 많은 노래비를 보유한 작사가로도 알려져 있다.[3] 내 고향 마산항,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두메산골, 소양강처녀, 삼천포아가씨 등의 노래비가 전국 곡곡에 세워져 있다. 고향 마산에서는 반야월 가요제도 열려 왔다.[4] 일제 강점기 말기에 가수로 〈소년초〉, 〈조국의 아들〉 등을 불렀으며 〈결전 태평양〉, 〈일억 총 진군〉와 같은 군국가요 작사에 참여한 경력[5][6] 이 있어, 2008년에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음악 부문에 포함되었다. 이에 대해 그는 2010년 6월 친일행적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는 "무슨 말을 해도 핑계다. 있었던 일은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7] 2012년 3월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가족으로는 부인 윤경분, 여사 사이에 슬하 2남 4녀를 두었다 박미라 박미호 박애라 박희라 박보라 박인호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제법 유복했으나, 고등학생 때 집안의 형편이 어려워져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양복점을 하는 숙부를 찾아가 제단 등을 배우며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어린 시절에도 제법 가창력이 뛰어났는지 당시 청주 시내에서 '노래하는 양복쟁이'로 통했다고 한다. 당시 청주 지역에서 노래대회 등이 열리면 모조리 상을 휩쓸고 1939년에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가 주최하는 '전국 콩쿠르 대회'에서 입상하여 가수로 데뷔하였다. 활동 시에 예명도 많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반야월이라는 예명을 사용했고, 가수 활동 시에는 '진방남'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였다. 이 외에도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백구몽' 등 여러 예명들도 썼다. 예명을 여러 개나 쓴 이유는 작사를 너무 독식하는 느낌을 피하려고 했다고 한다. 작사가 활동 시의 대표작들로는 소양강 처녀,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산장의 여인, 산유화, 만리포사랑, 무너진 사랑탑, 아빠의 청춘, 열아홉 순정 등이 있다. 가수 활동 시의 대표작들로는 불효자는 웁니다, 잘 있거라 항구야, 마상일기, 꽃마차 등이 있다. 일본 제국 시절에 작사한 것도 있긴 하나,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노래를 작사하고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작사가이면서, 가장 많은 노래비를 보유한 작사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청년층 사이에서도 이 사람이 제작하거나 직접 부른 멜로디나 노래 제목을 한 번 이상 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대중가요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을 선전하는 가요를 만들었던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기도 했다. 3. 대표곡 단장의 미아리고개 (반야월 작사 / 이재호 작곡) 이 노래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서울특별시 성북구 미아동에 거주하던 반 씨가 인민군이 서울을 포위하자 단신으로 급히 피난을 떠났다가 9.28 수복으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5살이었던 반 씨의 딸(박수라)이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아사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묘소까지 찾을 길이 없자 비통한 마음에 지은 노래라고 한다. 매년 6월이면 한국 전쟁과 함께 불려지는 노래다. 울고 넘는 박달재 (반야월 작사 / 김교성 작곡) 이 노래는 반 씨가 유랑극단을 이끌며 지방순회 공연을 다니던 도중 충주시에서 제천시으로 이동하려고 천등산 박달재를 넘어가던 중 저 멀리서 농부로 추정되는 부부가 헤어지는 모습을 보고 아내의 심정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다 대표곡 (진방남) 〈불효자는 웁니다〉 1940년 〈잘 있거라 항구야/천아토 작사 이재호 작곡〉 1940년 〈마상일기/조경환 작사 홍갑득 작곡〉 1940년 〈꽃마차/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진방남 작사 데뷔곡 1942년 대표작 (반야월) 〈울고 넘는 박달재〉 1948년 〈단장의 미아리고개〉 1956년 〈산유화〉 1956년 〈산장의 여인〉 1957년 〈무너진 사랑탑〉 1958년 〈만리포 사랑〉 1958년 〈열아홉 순정〉 1957년 〈아빠의 청춘〉 1966년 〈소양강처녀〉 1969년 진방남 노래 모음 01. 고향만리 사랑만리 - 朴英鎬作詞/ 李在鎬 作曲 1941년 12월 02. 꽃마차(1942)/진방남 (반야월 작사 / 이재호 작곡) 03. 국경(國境)의 파지장(波止場) (1942) 처녀림 사 / 이재호 곡 04. 금풍년 은풍년 - 반야월 작사 / 김교성 작곡 1942,4 (원곡; 돈 풍년 쌀 풍년) 05. 기타줄 하소 - 1941년 불노초 작사 무적인 작곡 06. 눈 오는 백무선(白茂線) 1941년 1월 불로초 사 / 이재호 곡) (태평) 07. 마상일기(馬上日記)(1940) (高麗星 作詞 / 洪甲得 作曲 / 李在鎬 編曲) 08. 명사백리明沙百里 (1942,10) 김영일 作詞 / 김교성 作曲 09. 방랑의 처녀 - 半夜月 作詞 / 李在鎬 作曲1954년 서라벌레코드 10. 북지행 삼등실(北支行 三等室) 金榮一作詞/李在鎬作曲 1941년 10월 11. 불효자는 웁니다 -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1940 태평 12. 사막의 애상곡 / 데뷔곡 1939년 12월 金榮一 作詞 / 金敎聲 作曲 13. 소년초(少年草) 1942년 11월 김다인 사, 이재호 곡 1942년, 11월 14. 애련화 - 劉道順 作詞 / 全基玹 作曲 39,08 / 채규엽 원창곡 15. 어이나 할 것인가 - 이서구 작사. 전기현 작곡 (최남용 원곡 1936,10) 16. 제 2 유랑극단 - 이서구 사 / 전기현 곡 39,09 / 원창 채규엽 17. 조국의 아들 - 처녀림 사 / 이재호 곡 1942 군국가요 / 박향림 조창 18. 조선(朝鮮)의 누님 1942년 11월 김다인사, 이재호곡 taihei-record 발매, 19. 청춘복지(靑春福地) 1943년 8월 김다인/전기현 20. 향수(망향)의 탱고 - 작사 반야월/ 작곡 이재호 1952 21. 길순아 잘있거라 (1975)(원곡 北支行 三等室 4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