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딱 다섯 번" 조선 사람이 몸을 씻은 날은 왜 전부 여름이었을까
세상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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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딱 다섯 번" 조선 사람이 몸을 씻은 날은 왜 전부 여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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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생활사, #한국사, #청계천, #조선시대, #한양
조선 사람이 몸을 담근 날은 1년에 다섯 번, 그것도 전부 여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름은 개천이 넘쳐 도성이 오물 섞인 물에 잠기는 계절이기도 했어요.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계절과 가장 끔찍한 계절이 왜 같았는지, 조선 사람의 여름을 따라가 봅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 조선의 전신 목욕이 몰려 있던 다섯 날 — 삼짇날, 단오, 유두, 칠석, 백중. 다섯 개가 전부 음력 3월에서 7월 사이입니다
· 유두라는 이름 자체가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었고, 단옷날에는 창포를 가마솥에 끓인 물로 머리를 감았습니다
· 한양의 우물은 다섯 집쯤이 함께 쓰던 공용 시설이었고, 우물이 먼 집은 물장수에게 물을 사서 썼습니다
· 진짜 벽은 물이 아니라 나무였습니다 — 17세기 한성부는 서울 안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보다 때는 나무가 더 많아진 상태였어요
· 소나무를 함부로 베면 곤장 아흔 대, 큰 소나무를 열 그루 넘게 베면 사형이라는 규정까지 있었는데도 산은 계속 벗겨졌습니다
· 그때 서울 사람이 시장에서 사던 필수품 넷 — 쌀, 생선, 소금, 그리고 땔나무였습니다
· 900년 전 고려 사람은 여름이면 날마다 두 번씩 씻었습니다. 같은 반도, 같은 사람들인데 바뀐 건 조건이었어요
· 도성의 유일한 배수로였던 개천은 동시에 하수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벗겨진 산의 흙이 그 바닥을 계속 높였습니다
· 개천의 수위를 재던 눈금이 꼭대기까지 잠긴 것이 146년 동안 스물네 번, 6년에 한 번꼴이었습니다
· 태종은 인부 5만 2천 8백 명으로 물길을 팠고, 세종은 수표와 측우기로 물을 숫자로 바꿨습니다
· 영조는 8년을 묻고 57일을 팠습니다. 동원된 20만 명 중 5만 명은 삯을 받고 일한 고용 인력이었어요
· 그 계절에서 풀려난 시점 — 1908년 뚝도정수장,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이 재래식보다 많아진 1990년
🔗 출처 리스트
국가유산청 월간 국가유산사랑 — 「우리 선조의 목욕문화」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 「우리는 어떻게 목욕했을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목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유두」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 「더운 여름 물맞이, 유두流頭 풍속」
뉴스퀘스트 — 「'단오' 조상의 슬기가 담긴 '창포물에 머리감기'와 '그네뛰기'」
우리역사넷 — 「동국세시기 1849」
『고고학』 23권 2호 — 「GIS를 이용한 한양도성 우물 분포의 환경적·사회적 요인 분석」 (202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물장수」
『조선시대사학보』 102호 — 「불과 물: 조선후기 이상저온 현상 속 한성부의 온돌 확산과 청계천 준설」 (2022)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국가기록원 산림녹화 아카이브 — 「산림 황폐화 직접 원인」
국립민속박물관 — 「[겨울] 소나무」
『서울과 역사』 106호 — 「조선후기 서울의 땔감 유통」 (2020)
우리역사넷 — 「경강상인」
위키백과 — 「고려도경」
우리역사넷 — 「한증욕」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 「한증소(汗蒸所)」
서울시설공단 — 청계천 소개 「청계천 탄생」
서울시설공단 — 「영조, 개천을 치다」
경향신문 — 「조선시대 한양 거리는 '똥 천지'」 (2012.10.10)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 — 「한양의 전문적인 분뇨처리업자, 똥장수」
우리역사넷 — 「도시의 발전과 도시인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콜레라」
우리역사넷 — 「감염병과 방역」
우리역사넷 — 「하천의 수위를 측정해 홍수를 예측하다」
국가유산청 월간 국가유산사랑 — 「현대와 견줄 만한 조선 국왕의 민주적 민원 해결」
위키백과 — 「측우기」
환경부 『2024 하수도 통계』
K-water 수도역사관
이투데이 — 「2000년 된 공중목욕탕, 우리나라 최초 목욕탕은 언제 생겼나?」
충청투데이 — 「수세식 화장실 역사 통해 본 하수도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