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이 감옥에서 나온 뒤 살아간 55년 | 마리 테레즈
침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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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의 딸이 감옥에서 나온 뒤 살아간 55년 | 마리 테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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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남은 것과 후대의 전승, 학자들의 추정을 구분해 말씀드립니다. 1792년 8월 가족 다섯이 파리 탕플 탑에 갇힌 날에서 시작합니다. 1795년 12월 그 탑을 혼자 걸어 나온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 마리 테레즈가 1851년 10월 숨을 거둘 때까지 산 쉰다섯 해를, 본인이 남긴 글을 따라 짚습니다. 사료는 열여섯 살에 탑에서 직접 쓴 회고와, 그 글을 1892년에 처음 그대로 인쇄한 책에 실린 편지와 영수증입니다.
오늘 짚는 기록 다섯 가지
1. 1795년 · 르네트의 손에 남긴 공책
2. 1795년 · 공화국이 받은 영수증
3. 1805년 · 자기 손으로 고쳐 베낀 사본
4. 1815년 · 보르도의 벽에 붙인 포고문
5. 1823년 · 허락 없이 인쇄된 책
타임라인
0:00 다섯이 들어가 하나가 걸어 나온 감옥
1:30 베르사유에서 태어난 딸, 탕플 탑에서 쓴 글
10:14 첫 번째 기록 — 르네트의 손에 남긴 공책
16:01 2번째 기록 — 공화국이 받은 영수증
18:21 3번째 기록 — 자기 손으로 고쳐 베낀 사본
20:35 4번째 기록 — 보르도의 벽에 붙인 포고문
23:08 5번째 기록 — 허락 없이 인쇄된 책
25:26 이듬해 — 어머니가 앉았던 자리
28:27 되짚기 — 오늘 짚은 기록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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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사료: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 드 프랑스가 쓴 회고 — 가족인 왕족들의 감금에 대하여』(Mémoire écrit par Marie-Thérèse-Charlotte de France sur la captivité des princes et princesses ses parents, 파리 플롱 출판사, 1892, 마드리드 공작부인이 가진 자필 원고에 따라 간행). 시카고 대학교 누리집에 옮겨진 전문으로 읽었습니다 — https://penelope.uchicago.edu/angoule... — 영상에서 읽어 드린 딸의 문장과 편지, 영수증, 서문의 말은 모두 이 책에서 대조했습니다. 빈에 도착한 날짜(1796년 1월 9일)는 아버지의 시종 위에 남작의 『회상록』 9장 — https://fr.wikisource.org/wiki/Souven... — 에 있습니다. 1815년 보르도의 스물여드레는 프랑스 국립기념물센터와 보르도 미술관의 설명이 일치하는 데까지만 다뤘습니다. 어둠의 백작부인 유전자 검사는 2014년에 결과가 발표됐고 논문은 학술지 Forensic Science International: Genetics(2015)에 실렸습니다. 읽지 못한 것도 밝힙니다 — 보샹의 『보르도의 앙굴렘 공작부인』(1815, 보르도 시장 랭슈 백작의 보고서가 붙은 소책자)과 엘렌 베케의 『마리 테레즈 드 프랑스』(페랭, 2012)는 본문을 읽지 못했고, 베케의 책은 학술 서평이 전하는 데까지만 옮겼습니다.
화면 자료: 그림·판화·옛 사진은 위키미디어 커먼즈의 퍼블릭 도메인·CC0 자료입니다 — 피에르 드니 마르탱 「베르사유 궁」(1722), 비제 르브룅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1787), 하우어 「루이 16세의 작별」(1794)·「어머니와 떨어지는 루이 17세」(1795), 쿠하르스키의 루이 샤를 초상(1792~1793), 주크스 판화 「바젤 도착」(1796, 카르나발레 박물관, CC0), 아르누 석판화 「루이 16세 속죄 기념 건물」(카르나발레 박물관, CC0), 보차 「공작 부부의 보르도 도착」(보르도 미술관), 그로 「앙굴렘 공작부인의 폴리악 승선」(1819, 보르도 미술관)과 공식 초상(1816~1817), 그랑시르 「코스타니에비차 수도원」(1883), 『라 모드』 석판화 「프로스도르프 성」(1870년 무렵, 카르나발레 박물관, CC0), 1917년 책 『쿠를란트 공국사』에 실린 「미타우, 새 궁」, 1918년 『보헤미안 리뷰』에 실린 프라하 성 사진, 하트웰 하우스 사진(촬영자 Giano가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
망원경으로 보고 그린 1795년 판화(12:15)와 뒤누이의 랑부예 성 소묘(25:44): Source gallica.bnf.fr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그 밖의 장면은 AI로 그린 재현 그림과 재현 영상입니다. 책의 인쇄면과 자필 원고로 보이는 화면도 실물 사진이 아니라 재현 그림입니다. 화면의 세 가지 표시는 근거 등급입니다 — "기록에 있음"은 딸의 글과 편지, 영수증, 그리고 날짜가 확인되는 일들, "후대의 전승"은 뒷날의 서문과 전기가 전하는 장면과 말, "학자들의 추정"은 2012년 연구서의 해석 한 문장입니다.
가설과 확인된 사실은 영상 안에서 구분해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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