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 3강 치유는 과연 하늘의 터치인가
현목 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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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 3강 치유는 과연 하늘의 터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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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 3강: 치유는 과연 하늘의 터치인가
[오늘 말씀 한눈에]
핵심 주제: 성경 시대의 치유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표징이었고, 오늘날의 치유는 그때와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지닙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시지 않는 신비 속에도 선하신 뜻이 있으며, 치유 사역은 반드시 성경적 지침과 교회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핵심 구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애굽기 15:26)
오늘의 한 문장: 치유는 십자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정확히 가리키는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며, 고쳐 주시든 고쳐 주시지 않든 그 모든 것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습니다.
1. 성경 시대의 치유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표징이었다
1) 신구약 성경에 걸쳐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시되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 라파', 즉 "치료하시는 여호와"(출15:26)로 소개하셨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와해시키는 파괴적인 세력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의 구원은 죄로 훼손된 그분의 작품을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여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유는 처음부터 창조의 갱신이며 범죄한 인간을 회복하는 구원 사역의 중요한 한 단면입니다.
2)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사야가 기록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자신에게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눅 4:18-19; 사 61:1-2 참조). 주님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며 병자들을 고치는 것은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대망했던 메시아의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심, 병자를 고치심, 귀신 들린 자를 자유롭게 하심은 서로 긴밀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메시아 사역입니다.
3) 특별히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신 사건에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를 즐기며 경축하는 날이지만, 죄로 오염되고 파괴된 피조물의 현재 모습은 그 온전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하지 못하시고 망가진 작품을 고치는 일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는 말씀처럼, 주님이 병자들을 고치신 것은 하나님이 바로 그 일을 하고 계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4) 베드로와 바울 등 사도들의 치유 사역도 예수님의 치유 사역과 대비되게 기록되어, 사도들의 가르침과 복음이 예수님의 사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행 3:1-10; 14:8-10; 9:36-42; 20:7-12 참조).
그래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하였습니다. 치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이 회복되는 새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표징이며, 우리는 이 새 창조의 첫 열매입니다.
나눌 말씀 / 예수님이 복음 전파, 병 고침, 귀신 쫓음을 하나로 긴밀하게 행하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2. 오늘날의 치유는 성경 시대와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함께 지닌다
1)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독특합니다. 그분의 치유는 완벽했고 실패한 적이 없었으며 대부분 즉각적으로 완쾌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예수님처럼 치유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을 우리가 대신할 수 없듯이, 주님이 수행하신 메시아의 사역들을 우리는 그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의 치유와 오늘날의 치유는 분명한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2) 그러나 연속성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그분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체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죄로 병들고 망가진 인간을 고쳐 온전한 상태로 회복하여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새 창조의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치유의 은혜는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교회와 선교지에 계속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3) 현대의 치유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시대적 발전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하시는 방법을 꼭 기적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술이라는 방편을 통해서도 치유하십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진료와 처방과 안수 기도는 비록 그 형태는 다르지만 그것을 기도와 믿음으로 수행한다면 성령의 은사가 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은 '인위적인 것'인 반면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고침받는 것은 '신적'이라는 이원론적인 사고는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지금도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하지만, 그것만을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는 '이적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현대 의술의 혜택을 누려야 합니다. 동시에 의술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음을 직시하여, 궁극적으로 고치시는 분은 위대한 의원이신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눌 말씀 /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과 기도로 기적적으로 고침받는 것을 '인위적인 것'과 '신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이것이 왜 잘못된 이분법인가요?
3. 고쳐 주시지 않는 신비 속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
1) 교회는 성령 안에서 종말론적인 회복과 치유의 은혜를 미리 맛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치유는 불완전하며 미래의 완전한 치유를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속했지만 아직도 이 땅에 속한 지체, 곧 죄와 사망의 육체를 입고 있습니다.
완전한 치유는 이 땅에 속한 지체를 벗어버릴 종말에 가서야 이루어집니다. 그때까지 우리 육체는 불가피하게 약함과 질병과 노쇠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종속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병과 고통의 문제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즉시 해결해 주지 않으심으로 더 깊은 차원에서 그분의 사랑과 배려를 나타내기도 하십니다.
고통과 질병은 우리를 하나님과 꼭 붙어 하나가 되게 하는 영적인 조임쇠 역할을 합니다. 고통이 쉬 가시면 우리 안에 기도의 습관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그분과 온전히 연합하기까지 계속 고난이라는 압력을 가하실 때가 있습니다.
3) 치유 신학에서 가장 흔한 오류는 '영광의 신학'입니다.
이것은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으면 반드시 육체의 질병도 치유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믿으면 예외 없이 죄 사함을 받지만, 질병마저 100퍼센트 치유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구원을 종말론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완전한 육체적 치유가 종말에 가서야 이루어집니다. 미리부터 치유되는 것이 유일한 주님의 뜻이라고 못 박는 믿음은, 사실 나의 욕망을 주님의 뜻으로 투사하여 조종하려는 일종의 강압입니다.
4) 반면에 주님의 뜻이면 고쳐달라고 기도하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순종의 고백을 담는 것이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는 겟세마네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치유 사역이 사람들의 관심을 십자가로부터 가로채서 기적과 능력에만 쏠리게 한다면, 이는 오늘날 만연하게 나타나는 치유 사역의 병폐이며 십자가의 도를 거스르는 것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나눌 말씀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기도했던 경험이 있나요? 반대로 고쳐 주시지 않을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거나 자책했던 적은 없었나요?
4. 치유 사역은 반드시 성경적 지침과 교회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1) 십자가의 중심성을 상실한 치유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인간의 부패한 욕망에 의해 현저히 왜곡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치유 실적을 부풀려 말하거나,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히도록 집회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영적인 사기 행각입니다.
치유 사역을 통해 교회 부흥을 꾀하며 자기 영광과 성공을 추구하는 이들도 이런 범죄에 근접해 있으므로, 치유 사역을 하는 이들은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2) 모든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성장하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기에, 치유의 은사도 반드시 이 목적에 부합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치유의 능력과 은사가 나타나는 이들은 그 은사를 개인적인 야욕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며, 반드시 교회 안에서 목사의 감독과 인도함을 따라 말씀의 통제를 받으며 겸손하게 은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교회의 장을 떠난 치유 사역은 말씀 사역의 바탕에서 유리된 채 본래의 기능과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야고보서는 교회가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4-16).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와 장로들은 자신들의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에 위임하신 하나님 나라의 권세에 의존하여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4) 또한 야고보서는 성도들이 서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전체적으로 또는 소그룹으로 모여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간구를 통해 형제의 고통에 참여하고 그 짐을 분담하는 사랑을 실천하며 서로 한 몸을 이룬 지체라는 의식이 깊어집니다.
우리 교회가 소외되고 병든 이들을 돌보고 섬기는 사랑이 풍성한 공동체가 될 때, 치유의 은혜도 풍성하게 나타나는 치유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나눌 말씀 / 우리 교회(소그룹)는 야고보서 5장의 지침을 따라 서로의 아픔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인가요? 이번 주 내가 짐을 나누어 기도해 줄 수 있는 지체는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