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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상황보다 원리에 충실한 믿음 (삼상24:8-22)_충주빛의숲교회_민준기 목사_20261011

충주빛의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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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상황보다 원리에 충실한 믿음 (삼상24:8-22)_충주빛의숲교회_민준기 목사_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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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한분이면충분한교회 #충주 #봉방동 #감리교회 #사무엘상강해 #261011주일설교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알고 있는 원리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알면서도 막상 손해를 보거나 억울한 상황에 놓이면 말씀보다 상황을 따라가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알고 있는 말씀에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느냐?’ 입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곧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깨달은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로소 믿음이 자라고 삶이 변화됩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지만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이유로 그를 해치지 않았던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은 데서 그치지 않고 사울을 뒤따라가 자신의 무죄를 호소합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신앙의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굴에서 나간 사울을 뒤따라가 “내 주 왕이여”라고 부르며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합니다(8절). 자기를 죽이려고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원수에게 절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잘못된 행동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왕의 직분을 구별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에게 얼마나 악하게 했는지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다. 사울을 죽일 능력이 있는지, 죽이면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자신이 직접 심판하지 않겠다는 신앙의 원리를 붙들었습니다. 믿음은 상황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보면서도 상황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사울을 죽여도 다윗을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상황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내가 상처를 받고 손해를 보며 상대방이 악하게 대할 때,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우리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상황이 좋으면 순종하고 나쁘면 불순종한다면 참된 믿음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내게 유익하면 말씀을 따르고 손해가 되면 말씀을 포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습니다. 상황에 이끌리지 않고 말씀의 원리를 붙든 것입니다. 2. 원리에 충실한 사람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은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다윗은 사울의 잘못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사울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판단과 결과를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무죄를 설명하고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죽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되, 심판과 보복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롬12:19-21절은 말씀합니다.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세상은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면 더 강하게 공격하고, 손해를 보면 반드시 되갚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르게 말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며,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에게도 사울을 죽이고 도망 생활을 끝내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쉬운 길이 항상 하나님의 길은 아닙니다. 다윗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면 똑같이 갚아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자리를 남겨 놓아야 합니다. 3. 말씀에 대한 감동을 삶의 순종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라고 말하며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16절). 그리고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라고 인정합니다(17절). 나아가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20절). 사울은 분명 다윗의 행동에 감동했고 자신의 잘못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삼상 26장에 가면 사울은 다시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추적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감동받는 것과 변화되는 것은 다릅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과 회개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은 말씀을 듣고 “맞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도 말씀을 듣다가 마음이 뜨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용서해야겠구나’,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야겠구나’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감동은 있었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고, 깨달음은 있었지만 습관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감동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용서해야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용서해야 합니다. “기도해야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감동이 삶의 순종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믿음은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은 상황이 좋을 때보다 상황과 말씀이 충돌할 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할 것인가? 억울하더라도 하나님께 맡길 것인가? 충분히 보복할 수 있어도 내 손을 거둘 것인가? 내가 원하는 길이 열려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내려놓을 것인가? 다윗에게 엔게디의 굴은 단순히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다윗의 신앙이 진짜인지 드러나는 자리였습니다. 상황이 다윗의 행동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의 행동을 결정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아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동받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그 감동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상황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으로 상황을 이겨내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