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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는 '멸'부터, 구마라집은 '생'부터 — 뒤바뀐 배열의 뜻

불교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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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는 '멸'부터, 구마라집은 '생'부터 — 뒤바뀐 배열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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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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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의 『중론』은 그 첫머리를 여덟 개의 부정으로 엽니다.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이어지지도 끊어지지도 않으며, 같지도 다르지도 않고,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 부처를 찬탄하는 첫 자리에서, 왜 하필 여덟 번이나 '아니다'라고만 했을까요. 이 영상은 그 물음 하나를 붙들고 귀경게를 천천히 읽어 갑니다. 먼저 여덟 개의 부정이 어떻게 네 쌍으로 짝을 이루는지, 각 쌍이 무엇을 함께 부정하는지 단어의 뜻부터 살핍니다. 이어 그 부정이 어떻게 '중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짚습니다. 여기서 '중도'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의 관점으로 세운 것은 중국 삼론종, 특히 길장의 정리였다는 점을 분명히 구분해 두었습니다. 불교 전체의 단일한 견해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문만 읽어서는 잘 보이지 않는 한 지점을 함께 봅니다. 산스크리트 원문은 '멸'의 부정을 먼저 두는데, 구마라집의 한역은 '생'의 부정을 앞으로 끌어내어 순서가 뒤바뀌어 있습니다. 이 배열의 차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원문에 적힌 사실과 해설자의 읽기를 나누어 조심스럽게 헤아려 봅니다. 끝으로 그 여덟 번의 부정이 도착한 곳을 봅니다. 귀경게의 둘째 게송은 이 부정들이 온갖 희론을 멸하여 고요에 이르게 함을 말합니다. 부정의 끝은 또 하나의 단정이 아니라, 말이 그친 고요였습니다. 무언가를 서둘러 규정하고 확정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것. 채우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것. 팔불이 오늘의 우리에게 조용히 건네는 것은 그런 권유에 가깝습니다. 경전 원문과 학술·교학 자료에 근거해 정리했으며, 전승과 역사적 사실, 원문과 해설자의 읽기를 구분해 담았습니다. #불교의밤 #중론 #팔불중도 #용수 #불교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