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십여 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것은 도적도 벼랑도 아니었다ㅣ조선 옛길의 기록ㅣ영조실록이 남긴 숫자
역사비하인드
0:00 / 0:00
백이십여 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것은 도적도 벼랑도 아니었다ㅣ조선 옛길의 기록ㅣ영조실록이 남긴 숫자
102 просмотра · 2 нед. назад
역사비하인드
44 подписчика
102 просмотра · 2 нед. назад
문경새재, 죽령, 추풍령.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넘어야 했던 영남의 3대 관문입니다. 그런데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넘기를 꺼렸다고 전하는 고개는, 셋 가운데 가장 낮은 고개였습니다.
고개마다 사람들이 무서워한 도적과 전쟁, 이름, 그리고 대관령의 눈과 추위를 따라갑니다. 마지막에는 실록이 숫자로 남긴 한 달의 죽음을 꺼내 봅니다.
▶ 역사비하인드 구독하기 (클릭하면 바로 구독됩니다)
/ @역사비하인드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던 문경새재와, 1593년·1670년 실록에 남은 경상도 도적 기록을 봅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장날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선 보부상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1395년부터 60년 동안 안흥량 일대에서 배 200여 척이 부서지거나 가라앉은 바다, 배가 고개의 대안이 되지 못한 까닭을 봅니다.
1592년 4월, 비어 있던 조령과 탄금대 배수진, 그 뒤 겹겹이 세운 세 관문을 따라갑니다.
원과 주막, 역과 마패, 한글로만 새긴 산불됴심 표석까지 고갯길의 하룻밤을 그려 봅니다.
선비들이 추풍령을 꺼렸다고 전하는 이야기와, 추풍역의 글자가 원래 가을 풍년이었다는 짐작을 가릅니다.
삼국사기에 158년에 열렸다고 적힌 죽령과, 고개 이름에 얽힌 죽죽 이야기를 봅니다.
영서와 영동을 가르는 대관령의 겨울, 반정 주막과 원울이재, 신사임당의 시를 읽습니다.
1754년 영조실록이 적은 경기 땅 한 달의 죽음과 호환, 착호갑사와 호식총을 봅니다.
⏱ 챕터
00:00 642미터, 689미터, 221미터
00:55 문경새재, 도적과 보부상
04:50 바닷길은 왜 대안이 못 됐나
06:53 1592년 4월, 새재를 버린 장수
09:58 고갯길의 하루, 원과 주막
12:36 가장 낮은 고개의 이름
17:39 셋째 관문, 죽령
19:33 다른 축, 대관령의 겨울
24:11 실록이 숫자로 남긴 죽음
28:48 그 고개들의 오늘
일부 장면은 사료에 기반해 재구성·각색되었습니다.
🔗 출처 리스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추풍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
디지털김천문화대전 — 구름도 울고 넘는 추풍령
http://gimcheon.grandculture.net/gimc...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 선조수정실록 25년 4월 14일
https://sillok.history.go.kr/id/knb_1...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 영조실록 30년 윤4월 19일
https://sillok.history.go.kr/id/kua_1...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호환과 사냥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
그 시절 과거길에 나선 선비였다면, 이름이 무서운 낮은 고개였을까요, 아니면 숨이 차도 빠른 험한 고개였을까요?
🔔 이런 기록이 궁금하셨다면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문경새재 #추풍령 #죽령 #대관령 #조선시대 #과거시험 #역사비하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