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모두 잃고 18년을 버틴 광해군 | 왕에서 죄인이 된 비극적인 최후
웅이 역사원정대
0:00 / 0:00
가족을 모두 잃고 18년을 버틴 광해군 | 왕에서 죄인이 된 비극적인 최후
27 605 просмотров · 3 дня назад
웅이 역사원정대
311 подписчиков
27 605 просмотров · 3 дня назад
왕좌에서 쫓겨난 뒤에도
18년이 넘는 유배 생활을 견뎌낸 조선의 왕이 있습니다.
조선의 제15대 국왕, 광해군입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하루아침에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광해군.
아들 폐세자 이지는 교동도의 가시 울타리 안에서 가위와 인두를 이용해
약 21미터의 땅굴을 팠습니다.
오늘날 아파트 7층 높이에 맞먹는 거리였어요.
그러나 목숨을 건 탈출은 실패했습니다.
며느리 박씨가 먼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한 달 뒤에는 폐세자에게
자진하라는 명이 내려졌습니다.
그해 윤10월에는 아내 유씨마저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가족을 모두 잃은 광해군은 이후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태안으로 옮겨졌고, 병자호란 뒤에는 행선지도 모른 채 제주도로 보내졌습니다.
호송 관리들에게 홀대를 받고, 궁비에게 ‘영감’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는 긴 유배 생활을 견뎌냈어요.
광해군은 무엇을 기다리며 그 오랜 시간을 살아낸 것일까요?
복위할 날을 기다렸던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씩 견뎠던 것인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광해군의 폐위 이후 18년을 따라가며 폐세자의 땅굴 탈출, 제주 유배, 궁비의 질책, 병자호란과 인조의 항복까지 살펴봅니다.
또한 광해군을 억울한 성군이나 잔혹한 폭군 가운데 하나로 단정하지 않고,
그가 남긴 외교적 성과와 국내 정치의 잘못을 함께 바라봅니다.
나라 밖의 현실은 먼저 읽었지만, 나라 안에서는 사람들의 신뢰를 잃었던 왕.
여러분은 광해군을 어떤 군주로 기억하시나요?
챕터 안내
00:00 인트로 – 모든 것을 잃고도 살아남은 왕
제1장 – 하룻밤 사이 무너진 왕좌
제2장 – 아파트 7층 높이의 땅굴
제3장 – 침묵은 그의 마지막 방패였을까
제4장 – 행선지도 모른 채 도착한 섬
제5장 – “영감은 무엇을 잘했다고 대접을 바라십니까?”
제6장 – 같은 해, 두 왕의 엇갈린 운명
제7장 – 왕이 아닌 이름으로 맞은 죽음
제8장 – 나라 밖은 읽었지만, 사람의 마음은 잃었던 왕
참고 사료 및 자료
본 영상은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제작했으며, 실록에 기록된 사실과 후대 문헌에 전하는 일화를 구분해 재구성했습니다.
1.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재위 중 정치와 외교, 대동법 및 궁궐 공사 관련
기록
《인조실록》 인조 1년: 인조반정과 광해군 일가의 유배, 폐세자 이지의
땅굴 탈출 및 자진 기록
《인조실록》 인조 15년: 병자호란과 정축하성, 광해군의 제주 유배 관련
기록
《인조실록》 인조 19년: 광해군의 죽음과 장례 논의
2. 조극선, 《야곡삼관기》
태안 이송 당시 호송 관리들이 광해군을 홀대했다는 일화
3. 정재륜, 《공사견문》
제주 호송길에서 궁비가 광해군에게 ‘영감’이라 부르며 질책했다는 일화
4. 이형상, 《남환박물》
제주목 관아 인근 광해군 적거지에 관한 후대 기록
5.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및 한국고전종합DB
※ 후대 문헌에 전하는 대화와 일화는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기록됐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영상에서도 이 점을 구분해 설명했습니다.
#광해군 #인조반정 #조선왕조실록 #폐세자이지 #병자호란 #제주유배
#조선역사 #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