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유양동 양주별산대놀이마당 양주별산대놀이 정기공연 2026년09월19일 은하수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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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 중심의 경기 지방에서 연희되어 온 산대도감극의 한 분파로서, 본산대라고 하는 녹번, 아현 등지의 것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 산대놀이는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도 연희됐으며, 나례도감 후에 산대도감에서 관장한 궁중 행사에도 동원됐다. 양주별산대놀이는 4월 초파일, 5월 단오, 7월 백중, 8월 추석에 주로 연희되고 기타 대소 명절 외 가뭄 때의 기우제에도 연희되었으며, 한 번 시작된 연희는 밤 10시를 넘어 심지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나 형편에 따라 3~4시간으로 줄일 수도 있었다. 이런 놀이를 약 250여 년 전부터 해마다 한양 딱딱이패(백정, 상두꾼, 건달로 구성되었다 함)들을 초청하여 산대놀이를 놀게 했는데, 그들은 지방 공연 관계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많아지자, 이에 불편을 느낀 양주골에서 신명이 과한 자들이 딱딱이패를 본떠 탈을 만들고 연희를 시작하면서 계승되어 내려온 것이 양주별산대이며, 당시의 중요 인물은 이을축으로, 양주 최초의 탈 제작자라고도 한다.
놀이는 길놀이로 시작되는데, 양주별산대기와 영기를 앞세우고 연희자들이 풍물을 울리며 마을을 돈다. 낮 동 안은 주로 부유한 집에 들러 춤과 덕담을 베풀어 흥을 돋우다가 밤에 탈놀이가 시작되기 이전에 〈탈고사〉를 지내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격식대로 하면, 놀이 전의 고사에서 떡과 3색 과일 외에 소머리, 돼지 다리 등 푸짐한 제물이 올라야 하고 그 제물과 제주를 음복하여 취기가 돌아야 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양주별산대놀이는 다른 한국 가면극과 마찬가지로 음악 반주에 춤이 주가 되고, 노래가 따르는 가무적 부분과 거기에 묵극적인 몸짓과 덕담, 재담이라고 하는 사설, 즉 대사가 따르는 연극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상좌, 연잎과 눈끔적이, 애사당, 소무, 노장, 원숭이, 해산모, 포도부장, 미얄할미 역들은 대사가 없이 춤과 몸짓, 동작만으로 연기하지만 그 외의 역들은 대사와 춤과 몸짓, 동작으로 연기한다. 그 대사들은 평범한 일상 회화식이며, 말 없는 탈의 연기에서는 노장의 팬터마임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시종 대사 한 마디 없이 춤과 몸짓으로만 소무와의 파계 과정과 농희를 훌륭히 한 과장으로 성립시키고 있다. 춤사위는 어느 탈춤보다 다양하여, 한국 민속무의 기본을 찾을 수 있으며, 가면은 보다 사실적으로 등장하는 배역이 총 32명이나 겸용하는 가면이 있기 때문에 실제 사용한 가면 수는 22개 내외가 된다. 그 내용은 크게 8과장 8경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과장별로 보면 길놀이, 고사, 제1과장 상좌춤, 제2과장 옴중과 상좌, 제3과장 옴중과 먹중,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제5과장 팔먹중(제1경 염불놀이, 제2경 침놀 이, 제3경 애사당 법고놀이), 제6과장 노장(제1경 파계승놀이, 제2경 신장수놀이, 제3경 취발이놀이), 제7과 장 샌님(제1경 의막사령놀이, 제2경 포도부장놀이), 제8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로, 내용은 산대도감극과 공통 내용이며, 조선시대 서민 문화의 특성과 마찬가지로 파계승, 몰락한 양반, 사당, 무당, 기타 하인 및 늙고 젊은 서민들의 등장을 통해 현실 폭로, 풍자, 호색, 웃음과 탄식을 보여주며, 주제로는 ① 벽사의 의식무와 굿, ② 파계승에 대한 풍자, ③ 양반에 대한 모욕, ④ 남녀의 대립과 갈등, ⑤ 서민 생활의 실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당시의 특권계급과 형식, 도덕에 대한 일종의 반항 정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서민 생활을 연출하는 서민극으로,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전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