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마음 놓고 걸어 다닌 지 44년밖에 안 됐습니다
세상을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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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마음 놓고 걸어 다닌 지 44년밖에 안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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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야간통행금지 #통금 #한국사 #조선의밤
밤 열한 시에 편의점까지 걸어가는 이 평범한 일이, 사실은 마흔네 해밖에 안 된 자유입니다. 조선의 야간 통행금지가 어떻게 시작돼서 언제 진짜로 끝났는지, 종소리 스물여덟 번부터 1982년 1월의 그 자정까지 따라가 봅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밤 열 시에 종이 스물여덟 번 울리면 도성 문 여덟 개가 닫혔고, 새벽 네 시에 서른세 번 울리면 다시 열렸습니다
조선의 밤 시계는 밤 길이를 다섯으로 나누는 방식이라, 한 토막의 길이가 계절마다 달라졌습니다
통금을 어기면 걸린 시각에 따라 매 수가 달랐습니다. 초저녁엔 열 대, 한밤중엔 서른 대, 새벽엔 다시 열 대인 산 모양이었어요
그 매는 사극에 나오는 곤장이 아니라, 길이 1미터 남짓에 지름 1센티미터가 안 되는 물푸레나무 회초리였습니다
1401년, 사헌부 우두머리인 대사헌이 통금에 걸리자 태종이 그를 파직했습니다
손에 든 등의 색이 곧 벼슬이었습니다. 붉은 등은 정1품, 남색은 당상관, 그 아래는 노란색이었어요
매는 돈으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면제받는 값과 대신 맞아 주는 사람이 받는 값이 정확히 같았습니다
정작 밤에 가장 많이 잡힌 사람들은 도둑도 백성도 아니라 관청에서 일하던 아랫사람들이었습니다
통금이 풀리는 날은 1년에 사흘, 정월 대보름과 초파일과 섣달그믐이었습니다. 그날의 놀이는 전부 불과 달이었어요
보름달의 밝기는 0.25럭스, 지금 방 안 조명의 약 천 분의 일입니다
조선의 야금은 1895년에 폐지됐지만, 1945년에 이름만 바꿔 되살아나 36년 4개월을 더 갔습니다
통금이 완전히 풀린 건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자정입니다. 24시간 편의점은 그로부터 7년 뒤에 생겼습니다
🔗 출처 리스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야간통행금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순라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파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시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다리밟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달집태우기
우리역사넷 — 시보, 인정과 파루
우리역사넷 — 조명 용구
경향신문 — 매년 보신각 새해 알리는 제야의 종, 33번 타종 유래는? (2015.12.28)
경향신문 — 어제의 오늘: 1982년 야간통금 전면해제
sillokwiki — 범야(犯夜)
sillokwiki — 방야(放夜)
sillokwiki — 답교(踏橋)
우리문화신문 — 통행금지를 어긴 사헌부 대사헌 파직돼
우리문화신문 — 돈 받고 대신 매를 맞는 일, 매품팔이
대학지성 In&Out — 형구에 따라 매질 부위도 달랐다
대학지성 In&Out — 장독과 매품팔이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논문 — 17~18세기 야금(夜禁)제의 운영과 범야자(犯夜者)의 실태: 한성부를 중심으로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논문 — 조선후기 포도청의 야순(夜巡)활동과 야금(夜禁)정책의 변통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 밤의 길잡이, 초롱
서울시설공단 청계천 — 다리밟기
국가유산포털 — 경기도 민속문화유산 조족등(照足燈)
국가기록원 — 야간통행금지와 해제
한국일보 — 24시간 구멍가게 신기했던 편의점, 종합서비스 공간 됐지만…
세계일보 — 신병주의 역사저널: 숙종과 상평통보의 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