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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물은 공짜였고 여름의 물은 스무 배였다|조선 얼음 장사 300년이 기계 한 대에 끝난 이야기

기록으로 보는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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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물은 공짜였고 여름의 물은 스무 배였다|조선 얼음 장사 300년이 기계 한 대에 끝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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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보는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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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겨울, 한강 강가에 얼음창고 여덟 채가 한꺼번에 올라갔습니다. 돈을 댄 곳은 나라였고, 들어간 돈은 만 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창고에 쟁일 얼음의 원가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겨울 한강물은 저절로 얼고,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요. 공짜인 물을 담는 데 만 냥이 들어갔다면, 그 만 냥은 물값이 아니라 다른 것의 값이었습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 나라가 얼음을 세금처럼 걷던 시절 — 서빙고 13만 4,974정, 동빙고 1만 244정, 관영 빙고 전체가 약 3,750톤 · 얼음 한 정은 18.75kg. 이 단위가 이 영상 모든 숫자의 기준이 됩니다 · 1663년 장빙미 징수, 1741년 무빙제 — 나라가 얼음을 걷는 대신 사기 시작한 순간 시장이 열렸습니다 · 18세기 한강변 민간 얼음창고 30여 곳, 저장량 300만~500만 정. 나라가 가진 얼음의 15~25배 · 사빙고가 예외 없이 강가에만 있었던 세 가지 이유 — 채빙지·물길·포구 상권 · 빙어선(氷魚船), 냉동기술 이전에 존재한 냉장선. 배 주인은 생선 판매가의 10%를 구문으로 가져갔습니다 · 그래서 얼음창고는 창고가 아니라 통행세를 걷는 관문이었습니다 · 1782년 빙계 창설, 1786년 여덟 채 독점. 투자 1만 냥에 연 수익 최대 10만 냥 — 쌀 1만 석, 성인 3천~5천 명의 한 해 주식 · 독점 이후 얼음 공급량은 5분의 1로 줄고 값이 올라, 상인들이 생선과 고기를 보관하지 못했습니다 · 1787년, 김재심의 격쟁과 강경환의 상언. 그런데 강경환은 4년 전 동업자를 밀어내고 독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 양화진을 기준으로 동쪽은 독점 유지, 서쪽은 자유 판매 — 판매 규정이 아니라 지도 위의 재산선이었습니다 · 1789년 빙계 도고 혁파. 신해통공보다 2년 앞선 선례입니다 · 1910년 부산 제빙공장(일 6톤)부터 1959년 천연빙 채취 전면 금지까지, 300년 산업이 사라진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