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ейти к содержимому

청춘의 꿈 이영진 노래 김용대 작사 작곡 (1947 김용대)7080 삼태기 메들리 이영진 LIVE 카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디지털로 407(대림동)K-ARIRANG李咏陳歌謠博物館

삼태기 이영진 카페

0:00 / 0:00

청춘의 꿈 이영진 노래 김용대 작사 작곡 (1947 김용대)7080 삼태기 메들리 이영진 LIVE 카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디지털로 407(대림동)K-ARIRANG李咏陳歌謠博物館

15 просмотров · 8 дн. назад
삼태기 이영진 카페
39 подписчиков
15 просмотров · 8 дн. назад
청춘의 꿈 (1947 김용대) 이영진 노래 김용대 작사 작곡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생긋웃는 봄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봄봄 봄봄봄봄 가슴은 두근 두근 청춘의 꿈 산들 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봄 시냇가의 버들피리는 삐비리 삐리리리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라라~ 라라라~ 라라랄라 늴리리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청춘은 향기요 봄은 새나라 언제나 명랑한 노래를 부릅시다 개나리가 방긋 웃는 봄봄 청춘은 소근 소근 속삭이는 봄봄봄 봄봄봄봄 종달새 지지 배배 희망의 봄이요 산들 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봄 시냇가에 버들피리는 삐비리 삐리리리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라라~ 라라라~ 라라랄라 늴리리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새나라 김용대 (본명 김용팔) 1925년 경남 울산 강동 출생 김용대는 나이 어린 10대 때부터 악극단 황금좌에 입단해 지방 순회공연을 다녔던 막간가수 출신이다 1967년 춘천에서 공연 도중 사망 (향년 42세) 우리 민족의 정서는, 일괄해서 ‘한(恨)’과 ‘흥(興)’으로 얘기 한다. 그 ‘한’과 ‘흥’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흐르는 것이 노래다 일제시대부터 해방 후까지 흘러넘쳤던 우리 트로트의 양식과 주제 이미지는 거의 모두 눈물과 탄식이었다 가슴 저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정한, 고향을 멀리두고 그리는 방랑하는 나그네의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러다 해방이 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타고 눈물과 탄식을 새 희망으로 바꿔보려는 건전가요풍, 행진곡풍, 외래 춤곡 스타일의 노래들이 거리거리에 흘러넘쳤다 눈물을 슬픔을 거두고 새날의 새희망을 노래하자고 한다. 꿈같은, 봄날같은 청춘을 노래하자고 한다 이때 불린 노래가 4분의 2박자 폴카리듬의 경쾌한 봄노래 -[청춘의 꿈[(1947, 김용대 작사·작곡)이다 청춘의 꿈은 김용대가 직접 불렀다고는 하나 음반 제작기록이 없는데다, 음반 취입을 못한 채 그가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에 있던 백두레코드사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원방현(1928~2001)이 부른 노래와, [남원의 애수], [효녀 심청]을 부른 만요가수 김용만(金用萬, 1934~ )이 1960년 아세아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스플릿 엘피(SP)음반으로 취입한 [김용만 : 청춘의 꿈 / 황금심 : 무정] 수록곡 노래로만 전해져 온다 그로 인해 김용만을 이 노래의 원곡가수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곡은 김용대가 작사 작곡하여 취입한 곡이었는데 김용대가 일본으로 가자 반일감정이 한창일 때라 작사 작곡자를 바꾸어서 김용만이 취입한다. 음반이 발표되기 전 노래책에는 김용대 작사로 나왔는데 이것이 맞는 것이다 김용만의 음반이 나오면서 추미림(반야월)으로 작사가도 바뀐 것이다 김용대의 본명은 김용팔. 경남 울산 강동 출신으로 울산농업학교를 중퇴했다 그리고 나이 어린 10대 때부터 악극단 황금좌에 입단해 지방 순회공연을 다녔던 막간가수 출신이다 이때 [처녀뱃사공], [오동동타령]을 부른 가수 황정자와 함께 극단 생활을 했는데,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황정자와 동거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난영의 오빠 이봉룡이 작곡해 김씨스터즈가 1975년 미국에서 불러 히트시킨 [김치깍두기]를 1963년에 먼저 부른 원창자다 그런가 하면, 1950년대 후반에 이미 서양풍 음악의 하나인 요들송을 수용, [청춘 실은 꽃마차](1962)란 노래를 작곡해 부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즐거운 청춘산맥], [그대 찾는 탱고](송민도), [기타소야곡], [추억의 기타] 등의 그의 노래가 전해온다. 낙수거리 하나 -그는 일본에 가 있는 동안 [나 하나의 사랑]을 부른 유부녀 가수 송민도와 진한 사랑에 빠져 다시 한번 연예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반짝이는 생은 안타깝게도 길지 않았다 “1967년 춘천에서 공연 도중 사망했다.”(친조카 증언)… 이때 그의 나이 불혹을 갓 넘긴 42세였다 청춘의 꿈 1947년 가수 김용대 작사 작곡 1. 진달래가 쌩긋 웃는 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가슴이 울렁 울렁 춤을 추는 봄이요 진달래꽃 개나리꽃 쌩긋 웃는 봄 시냇가의 버들피리 비리비리 비리비리비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랄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랄랄 랄랄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2. 청춘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쌩긋 웃는 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가슴이 울렁 울렁 춤을 추는 봄이요 진달래꽃 개나리꽃 쌩긋 웃는 봄 시냇가의 버들피리 비리비리 비리비리비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랄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랄랄 랄랄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3. 청춘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쌩긋 웃는 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가슴이 울렁 울렁 춤을 추는 봄이요 진달래꽃 개나리꽃 쌩긋 웃는 봄 시냇가의 버들피리 비리비리 비리비리비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랄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랄랄 랄랄 봄봄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청춘의 꿈]을 드믈게 3절까지 부른 것으로 보아 원곡일 가능성이 있지만 발표일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1947년 녹음인지 이후 녹음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녹음상태와 반주의 형태로 보아 1947년일 확률은 떨어지는 것 같지만. 원창자 김용대의 노래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영상의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