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춤이 아니라 검술이오" 신선이라 불린 노비, 그가 끝내 도착한 자리
암행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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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춤이 아니라 검술이오" 신선이라 불린 노비, 그가 끝내 도착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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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를 검선, 칼 든 신선이라 불렀지만 그는 관비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조차 볼 수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왜관 흙구덩이에서 3년을 숨어 훔쳐온 칼이 아들의 몸을 거쳐 무예도보통지에 남기까지, 기록에 적힌 것만 따라가 봅니다.
· 임진왜란 뒤 조선이 일본 칼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와 벽제관에서 명나라 기병이 무너진 날
· 훈련대장 유혁연이 김체건을 동래 왜관에 보내달라고 청한 승정원일기 숙종 5년의 기록
· 머슴으로 위장해 땅에 움을 파고 3년을 숨어 지낸 사내가 눈으로만 외운 왜검 네 갈래
· 혼자 추던 칼춤을 둘이 맞붙는 대련으로 바꾸고 가죽 목검을 만든 김체건의 개조
· 어머니가 관비여서 아들도 종이 된 일천즉천의 원칙과, 우물물로 마룻바닥에 글씨를 배운 소년
· 광택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영조가 아니라 노론 4대신 이이명이었다는 사실
· 무과 급제자는 만 칠천 명인데 무신 당상관 자리는 삼백 개뿐이던 조선 무반의 현실
· 신선 이야기를 실제로 쓴 사람은 누구였나, 유본학과 문암문고에 실린 여섯 편의 전
· 그가 사람과 겨룬 기록은 남아 있는가, 그리고 조선 무인의 기록이 남는 방식
· 영조 33년 11월 임금 앞에서 한 대답 하는 일 없이 지내옵니다와 그 자리에서 받은 금위영 교련관
· 두 레퍼런스가 놓친 후일담, 1767년 고금도 첨사 종3품에 재임한 승정원일기 기록
· 무예제보에서 무예신보를 거쳐 무예도보통지로 이어진 검맥과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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