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에게도 아내가 있었습니다" 사극이 끝내 보여주지 않은 조선 내시의 집과 네 아들
암행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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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에게도 아내가 있었습니다" 사극이 끝내 보여주지 않은 조선 내시의 집과 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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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 내시를 수백 번 보셨어도, 그 사람이 궁에서 퇴근해 돌아간 집은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으실 겁니다. 1659년 내시 나업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아내가 직접 쓴 상속 문서에서 출발해, 조선 내시의 혼인과 양자, 녹봉과 무덤까지 한 편으로 따라갑니다.
· 1659년 내시 나업이 죽은 뒤 아내 한씨가 직접 쓴 상속 문서, 그리고 성이 전부 다른 네 아들
· 조선의 내시 족보 양세계보에 이름이 남은 777명, 핏줄이 한 줄도 이어지지 않은 족보
· 조선은 고환만 제거하고 중국은 통째로 잘라 냈다, 그 차이가 갈라놓은 평생의 일상
· 사극 속 내시 배역에게 수염이 없는 이유, 그리고 조선이 자진 거세를 법으로 금지한 까닭
· 내시의 혼인은 합법이었고 아내는 정경부인, 정부인 봉작을 받았다
· 종2품 상선의 녹봉은 영의정보다 적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재산은 어디서 나왔나
· 나업의 일생 — 열일곱에 출사, 스물다섯에 승전색, 자기와 같은 처지의 아이 넷을 양자로
· 감귤 하나 건네지 못하고 끝내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숙부와 조카
· 1504년 연산군의 환관 전수 신체검사와 1505년 김처선의 최후
· 내시가 양반보다 14년 더 살았다는 2012년 연구, 그리고 2016년의 학계 반박
· 사백 년 열여섯 대를 이어 온 청도 운림고택, 서울 초안산과 이말산의 내시 묘역
· 죽은 뒤 시신에 다시 꿰매 붙였던 것, 그리고 마지막 환관 순야오팅이 잃어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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