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는 위화도에서 왜 말머리를 돌렸을까? 위화도 회군의 진짜 이유와 그 뒤 4년
그뒤이야기
0:00 / 0:00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왜 말머리를 돌렸을까? 위화도 회군의 진짜 이유와 그 뒤 4년
435 просмотров · 2 дн. назад
그뒤이야기
29 подписчиков
435 просмотров · 2 дн. назад
1388년 여름, 장맛비에 불어난 압록강 한가운데의 섬 위화도. 요동을 치라는 왕명을 받은 고려의 대군이 보름 가까이 그 섬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우군을 이끌던 이성계는 강을 건너지 않고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렸습니다.
🔹 함께 권신을 몰아낸 최영과 이성계는 왜 몇 달 만에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되었을까요?
🔹 명나라가 내놓으라던 「철령 북쪽 땅」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 이성계가 출병 전에 말한 네 가지 안 되는 까닭(사불가론)은 무엇이었을까요?
🔹 말머리를 돌린 뒤 네 해, 그리고 철령위와 국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고려사』·『고려사절요』·『태조실록』 총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위화도에서 군대가 나오자 섬이 물에 잠겼다는 실록의 기록, 최영 장군 무덤에 풀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처럼 걸러 읽어야 하는 대목은 본문에서 그대로 밝혔습니다. 「강을 건넜다면」은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위화도회군 #이성계 #최영 #요동정벌 #사불가론 #철령위 #고려 #조선건국 #한국사 #그뒤이야기
⏳ 타임라인
00:00 강 한가운데의 보름
01:17 한편이었던 두 장수
03:42 철령 이북을 내놓으라
06:16 네 가지 안 되는 까닭
09:28 위화도의 보름
11:55 강 건너편의 사정
13:58 개경으로 향한 칼
16:49 그 뒤, 국경은 어떻게 되었나
📚 참고 자료
『고려사』 열전 우왕 14년 · 최영 · 조민수
『고려사절요』 권33~35
『태조실록』 총서 · 태조 7년
『명사』 · 『명실록』 홍무 21년·26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화도회군」 「철령위」 「사군육진」
🎨 그림·사진
옛 그림·사진(퍼블릭 도메인·CC0): 태조 어진(1872 이모본) · 정몽주 초상(이한철 모사) · 개성 선죽교(1910년대 사진) · 개성 만월대 터(1909 사진) · 요녕성 철령시 위치 지도
공공누리 제1유형: 『고려사』(국립중앙박물관) · 『삼봉집』 경판(국가유산청)
사진: Jjw(CC BY-SA 3.0) · 국립민속박물관(CC BY-SA 4.0) · Suikotei(CC BY-SA 4.0) · Koreanidentity10000(CC BY-SA 3.0)
"Lightless Dawn" · "Ossuary 6 - Air" — Kevin MacLeod, CC BY 4.0
CC BY 4.0 라이선스: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