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ейти к содержимому

"청계천은 처음부터 하수구였습니다" 세종이 감동한 한 줄

역사명가

0:00 / 0:00

"청계천은 처음부터 하수구였습니다" 세종이 감동한 한 줄

2 просмотра · 7 дней назад
역사명가
2 просмотра · 7 дней назад
#청계천 #개천 #세종대왕 #어효첨 #영조 #준천 #태종이방원 #광통교 #수표교 #조선왕조실록 "그 물은 맑을 수가 없습니다." — 1444년 섣달, 집현전 교리 어효첨이 세종에게 올린 글의 한 줄입니다. "어효첨의 논설이 정직하다. 내 그 글을 보고 마음으로 감동하였노라." — 그 글을 읽은 세종의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발을 담그는 청계천. 그 맑은 물은 한강에서 끌어온 물이고, 비가 오면 다리 밑 수문이 지금도 열립니다. 조선 500년 동안 이 물길의 이름은 '개천'이었습니다. 지금의 물가에서 덮여 있던 시절, 영조, 세종, 태종으로 한 칸씩 거슬러 올라가며 이 물길이 맡아 온 일을 따라갑니다. 🔹 청계천의 맑은 물은 어디서 올까? 🔹 영조는 왜 삽을 대기까지 8년을 망설였을까? 🔹 개천 물을 맑게 지키자는 말에 집현전 학자는 왜 반대했을까? 🔹 '개천'이라는 이름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 서울시설공단 · 서울연구원의 공개 자료에 남은 기록으로 따라갑니다. 세종이 그 뒤 금지를 거두었는지는 실록에서 찾지 못했다는 것, 방산동 이야기는 전해 오는 말이라는 것을 영상 안에서 밝혔습니다. 영상의 그림은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그린 것입니다. 🔗 영상에 나오는 곳 · 광통교 — 서울 청계광장에서 물길 따라 약 300미터. 다리 밑 받침벽에 신덕왕후 능에 쓰였던 돌(구름무늬 · 신장 조각) · 수표교 —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 안 (1959년에 옮겨 옴) · 수표 (보물) —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56 세종대왕기념관 · 오간수문 터 — 서울 청계6가 오간수교 (사적 「서울 청계천 유적」) · 방산동 — 서울 중구, 영조 때 파낸 흙을 쌓았다고 전하는 자리 · 청계천박물관 — 서울 성동구 청계천로 530 (무료 · 월요일 쉼 — 가시기 전에 누리집에서 확인하세요) ⚠ 비가 오는 날에는 청계천 다리 밑에 서 계시면 안 됩니다. 수문이 갑자기 열립니다 (서울시설공단 안내). ✔ 역사명가는 늘 지나다니던 자리에 남은 기록 한 줄을 찾아 읽습니다. 구독해 두시면 다음에 지나갈 자리도 미리 알려 드립니다 🔔 #청계천은원래하수구 #개천이라는이름의뜻 #청계천물은한강물 #청계천수문비오는날 #세종실록개천논쟁 #영조준천57일 #경진지평네글자 #태종개천도감5만명 #수표교장충단공원 #방산동이름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