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국수 한 그릇 먹기가 왜 어려웠을까? |조선시대 면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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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국수 한 그릇 먹기가 왜 어려웠을까? |조선시대 면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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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5,000원이면 3분 만에 나오는 국수 한 그릇.
그런데 900년 전, 송나라 사신 서긍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라 안에 밀이 적어 면의 값이 대단히 비싸, 큰 잔치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조선시대 밀가루는 '진말(眞末)', 즉 '진짜 가루'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졌고,
허락 없이 밀가루 과자를 만들면 곤장 60대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메밀로 국수를 만들었는데,
찰기가 없는 메밀 반죽을 면으로 뽑으려면 장정 두 명이 매달려야 했습니다.
국수 육수는 꿩고기가 기본이었고,
꿩이 부족하면 닭으로 대신 바쳤다는 기록에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생겼습니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재료의 귀함, 만드는 수고, 먹는 사람의 신분,
그리고 "국수 언제 먹여줄 거야?"라는 말의 진짜 뜻까지.
조선시대 국수 한 그릇의 무게를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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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라인
00:00 국수 한 그릇, 지금과 900년 전
00:52 채널 인트로
01:02 '진말' — 밀가루가 받은 특별한 이름
01:36 밀이 한반도에서 자라기 힘들었던 이유
02:45 곤장 60대 — 밀가루를 둘러싼 금기
03:30 대안, 메밀
04:10 메밀의 치명적 약점
05:07 국수를 만드는 세 가지 방법
05:44 김준근의 그림 — 장정 두 명의 사투
07:56 국수 육수의 정체, 꿩
09:07 "꿩 대신 닭"의 진짜 유래
09:45 누가 먹었나 — 왕실, 절, 양반, 평민
10:10 승소 — 스님이 웃는 음식
11:05 오희문의 피난 일기 속 국수
12:36 국수가 잔치 음식이 된 진짜 이유
13:27 "국수 언제 먹여줄 거야?"
14:32 초상에만 국수가 빠지는 이유
16:19 밀가루가 넘쳐난 날 — 한국전쟁 이후
17:18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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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및 사료
• 서긍, 《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4)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 장계향,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1670년경)
• 오희문, 《쇄미록(瑣尾錄)》 (1591–1601)
• 서유구,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 섬용지
• 유중림,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 《대전회통(大典會通)》 형전 금제조
• 《세종실록》 세종 4년 수륙재 관련 기사
• 《승정원일기》 인조 25년 꿩 대납 규정
• 기산 김준근, 〈국수 누르는 모양〉 (1880년대, 독일 베를린 민족학박물관 소장)
• 국립민속박물관,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 국수와 밀면》 조사보고서
• 한식진흥원, 【화폭에 담긴 한식】 (6) 국수 누르는 모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수틀', '수제비', '진말'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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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서재 — 오늘의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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