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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이걸 만든다고?" 일본에도 없던 기계를 세운 사람, 첫 빛은 끝내 못 봤습니다

경제가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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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이걸 만든다고?" 일본에도 없던 기계를 세운 사람, 첫 빛은 끝내 못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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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 #김호길 #posco #한국과학기술 1994년 12월 7일, 포항에 사람들이 잔뜩 모였습니다. 7년을 부어 만든 기계가 드디어 완성된 날이었어요. 그런데 이걸 짓자고 제일 먼저 우긴 사람이,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한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속을 들여다보는 그 빛은 38년 전 한 사람이 우겨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에서 입자가속기를 만들던 물리학자였는데, 정작 한국에 돌아와 처음 앉은 자리는 경남 진주의 2년제 전문대 학장이었어요. 그가 포항으로 가서 학교를 세우고, 그 옆에 1,500억짜리 기계를 하나 더 짓자고 했을 때 학계는 "한국의 과학기술로는 무리"라고 했습니다. 받아올 설계도가 없자 그는 강의하던 교수 아홉 명에게 부품을 하나씩 나눠줬고, 7년 뒤 기계는 완성됐습니다. 그런데 그는 준공을 일곱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어요. 오늘 밤 썰은 그가 못 본 그 빛이 22년 뒤 어떤 기록을 만들었고, 32년 뒤 지금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합니다. ▪ 1983년 진주 —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에서 가속기를 만들던 사람이 2년제 전문대 학장 명함을 들고 있었던 이유 ▪ 그를 한국에 데려온 건 포항이 아니었다 — 먼저 손을 내민 쪽은 따로 있었습니다 ▪ 부임 조건은 딱 하나 — 연봉도 자리도 아니었고, 돈을 대는 회장에게 요구한 건 다른 것이었습니다 ▪ 1,500억 — 학교 문 연 지 1년도 안 돼 꺼낸 금액. 포항제철이 864억, 나랏돈이 596억이었습니다 ▪ 교수 아홉 명에게 부품을 나눠주다 — 설계도가 있어서 나눠준 게 아니라, 그려 오라는 거였습니다 ▪ 1994년 4월 30일 토요일 오전 — 그날 포항공대 운동장에서 벌어진 일 ▪ 세계에서 다섯 번째 — 미국·프랑스·이탈리아·대만 다음이었고, 그 줄에 일본은 아직 없었습니다 ▪ 김칫국 금지 — 충북 오창은 네 번 연속 유찰로 2년이 밀렸고, 정작 우리 기업들이 "쓰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호재든 악재든 부풀리지 않습니다. 팩트와 데이터로 검증한 속사정만, 밤에 친구가 썰 풀듯 풀어드립니다. 포항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2029년 오창은 제때 문을 열 수 있을까요? 댓글에서 같이 얘기해봐요. 듣고 싶은 썰이나 궁금한 이슈가 있으면 댓글로 추천해주세요. 다음 영상으로 찾아오겠습니다. ※ 이 영상은 공개된 보도와 공식 발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일부 수치는 발표 기관과 집계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시운전 기간 비교는 정부와 포스텍이 발표한 기준을 따랐습니다. 특정 종목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