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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가 없던 시절, 서울 사람들은 물을 어디서 길어 왔을까

건축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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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가 없던 시절, 서울 사람들은 물을 어디서 길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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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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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서울역사 #한강종합개발 #수중보 #수돗물 홍수로 집 3만 채가 못 쓰게 되던 도시에서, 사람들은 정작 마실 물을 구하려고 공동 수도 앞에 밤새 줄을 섰습니다. 물에 잠기던 땅에 왜 마실 물이 없었는지, 그 모순을 푸는 데 20년이 걸렸고 오늘 우리가 보는 평평한 한강 수면이 그 답입니다. 다만 답에는 값이 붙었습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 1908년 뚝도정수장이 물을 보내기 시작했어도 서울 시내에 생긴 것은 길에 세운 공용수도 220개뿐, 집집마다 물을 나른 사람은 물장수였습니다 · 함경남도 북청 출신이 많았던 물장수 약 2,000명, 그리고 담당 구역에 물을 댈 권리가 재산으로 매매되던 시절 · 1960년대에도 서울 상수도 보급률은 50~60퍼센트대, 열 가구 중 네댓은 우물과 공동수도에 의존했고 송수관의 60퍼센트가 일제강점기 것이어서 보낸 물의 절반이 새고 있었습니다 · 한강의 하상계수는 약 390 — 템스강과 자릿수가 다릅니다. 가장 적게 흐를 때와 가장 많이 흐를 때의 차이가 극단적인 강이었습니다 · 1925년 을축년 물난리와, 잠실이 섬이 된 진짜 시점(1925년이 아니라 조선 중종 때인 1520년입니다) · 1968년 밤섬 폭파와 그곳에 살던 62가구 443명, 1971년 잠실 매립과 뽕나무로 살던 200여 가구 — 그리고 폭파 58년 만인 2026년에 시작된 조사 · 1970~80년대 골재 채취로 강바닥이 고르지 않게 되고, 1981년 서울시가 하류 정수장들의 취수원을 상류로 옮긴 이유 · 1982년부터 4년간 36킬로미터를 통째로 정비하고, 퍼낸 모래와 자갈 6,369만 세제곱미터로 여의도를 22미터 두께로 덮을 수 있었던 공사 · 정작 이 사업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간 곳은 물길이 아니라 하수였습니다 — 정비 구간의 일곱 배가 넘는 하수관로 · 깊게 파니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온 문제, 그리고 4대강 중 한강에만 하굿둑이 없는 이유(영산강 1981년, 낙동강 1987년, 금강 1990년) · 잠실과 신곡, 강에 세운 두 개의 낮은 담이 송파에서 김포까지 평균 수심 2.5미터를 지키는 방식 · 그 뒤에 날아온 청구서 — 1988년 물고기 떼죽음, 2006년에 새로 낸 43칸 계단길, 2019년 실증에서 드러난 「열 수 없는 이유」, 매년 약 45억 원씩 들어가는 준설, 그리고 2025년 한강버스가 강바닥에 걸려 멈춘 일 🔔 당연해진 것들의 값을 계속 따라가 보고 싶으시면 구독을 눌러 두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