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번외편 | 나가마사 일대기
호기심 많은 세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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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번외편 | 나가마사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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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이 깨지면 시집온 아내는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1570년 4월, 아사이 나가마사는 처남 노부나가와 갈라섰습니다.
그런데 오다니성 안방에는 노부나가의 여동생이 돌배기 딸을 안은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원숭이 야차라 불리던 아이가 어떻게 그 성문 앞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남의 집에서 온 이름과 아내를 돌려보내며 주인이 된 열여섯 살,
천하제일의 미인이라는 소문이 신부보다 먼저 도착한 혼례,
그리고 마지막 날 처음으로 아내를 돌려보낸 손까지.
아사이 나가마사의 스물아홉 해를 한 편에 담았습니다.
※ 번외편입니다. 아사이 나가마사와 오이치 사이의 감정을 직접 적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이 영상은 두 사람의 행동(갈라선 뒤에도 아내를 돌려보내지 않은 것, 마지막 날 아내와 딸들을 내보낸 것)과 시대의 관습을 바탕으로 장면화했습니다. 오이치의 '팥 자루', 엔도 나오쓰네가 가시와바라에서 암살을 진언했다는 이야기와 아네가와에서 아군의 목을 들고 노부나가에게 접근했다는 이야기, 오이치가 함께 죽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는 후대 기록(『아사이 삼대기』『태합기』)의 전승입니다.
두 사람의 혼인 시점은 1561년부터 1568년까지 여러 설이 있고, 오이치가 노부나가의 여동생이 아니라 사촌이라는 설, 만푸쿠마루의 생모가 오이치가 아니라는 설도 있습니다. 나가마사가 8월 29일에 가신 가타기리에게 보낸 편지는 실물이 남아 있으며, 날짜에 옛 연호 겐키를 쓴 것도 그 편지에서 확인됩니다. 자결 일자는 이 편지에 따라 9월 1일로 보는 견해를 따랐습니다(『신초코키』는 8월 28일). 고야산의 초상은 요도도노가 봉납했다고 전합니다.
세븐이가 들려주는 세상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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