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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장. 헤브론에서 보낸 나날; 기도가 먼저인가, 사랑 실천이 먼저인가?] 나계시 성경공부

순전한 가톨릭(Mere Cathol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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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장. 헤브론에서 보낸 나날; 기도가 먼저인가, 사랑 실천이 먼저인가?] 나계시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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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헤브론에서 보낸 나날. 엘리사벳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이 맺은 열매들 (루카 1,56) 기도가 먼저인가, 사랑 실천이 먼저인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하느님의 아기 옷보다 먼저 지은 옷이 있습니다. 남의 아기 옷입니다. 루카는 이 석 달을 한 줄로 지나갑니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그 한 줄 속의 나날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22장으로 들어갑니다. 아침, 마리아가 수틀 앞에 앉아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집안일로 오가면서도 들어올 때마다 어김없이 마리아의 금빛 머리를 어루만지러 옵니다. 마리아가 말합니다. 이 아마실로 잣고 싶은 것이 있는데, "아직 생각지도 못하던 때에 벌써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요. 16장에서 천사가 오던 날 잣고 있던 그 흰 실입니다. 엘리사벳이 아기 옷을 지으라고 하자 마리아는 먼저 엘리사벳과 아기의 것을 짓겠다고 합니다. "그럴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먼저 엘리사벳을 생각할게요. 그러고 나서 제 예수를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책은 마리아가 황홀경에 사로잡히는 듯했다고 적습니다. 두 여인의 몸도 대조됩니다. 엘리사벳은 많이 아프고, 마리아는 "제 마음에는 짐이 아니라 날개가 하나 있는 것만 같아요" 합니다. 엘리사벳이 그 까닭을 짚습니다. 티 없는 이는 하와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고요. 다음 장에서 성모님께서 친히 다루실 주제입니다. 그런데 대화가 갑자기 어두워집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두 손을 붙잡고 묻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려면 제 아기가 무엇을 견뎌야 하느냐고요. 그리고 이사야를 외웁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이사야서 53장 5절입니다. 이어서 묻습니다. 판결 뒤에 그가 들어 올려졌다는데 "무슨 들어 올려짐을 말하는 걸까요?" 사람들이 그분을 어린양이라 부르는데, 자기는 파스카의 어린양과 "모세가 기둥 위에 들어 올린 그 뱀"을 떠올린다고요. 민수기 21장 9절,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잉태 초기의 어머니가 던진 이 물음에, 훗날 아드님께서 요한 복음 3장 14절로 답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올려져야 한다." 어머니가 성경에서 먼저 읽어 낸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웁니다. 18장에서 첫 상처를 말씀하셨던 분이 이제 두 번째 상처를 여기서 여시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위로합니다. 많은 이가 그분을 잔인하게 대하겠지만 더 많은 이가 대대손손 그분을 사랑하리라고, 온 피조 세계의 임금으로 들어 올려지리라고, 그리고 제 아이가 앞서 가며 그분을 사랑하리라고요. 그 아이의 이름이 요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정원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환한 그림입니다. 마리아가 비둘기 탑 앞에서 모이를 뿌리자 비둘기들이 "날갯짓으로 그 둘레에 무지갯빛 고리를 그리며" 머리와 어깨와 손 위에 내려앉습니다. 새끼 염소가 앞발을 어깨에 얹고 머리카락 냄새를 맡고, 털북숭이 목자가 새끼 밴 양을 어깨에 메고 달려와 내려놓습니다. 19장에서 읽은 이사야 40장 11절, 젖 먹이는 어미 양을 조심스럽게 이끄는 목자가 여기 살아 있습니다. 여름이 깊어 무화과가 익고 사과가 붉어질 즈음, 엘리사벳은 몸이 무겁고 마리아는 베틀 앞에 있습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그려 봅니다. "곱슬거리는 금빛 머리카락에, 별들이 하늘가에 막 얼굴을 내밀 무렵 우리 갈릴래아 바다 같은 빛깔의 눈에, 볕에 익느라 막 벌어진 석류 조각처럼 자그맣고 붉은 입에." 갓 태어난 새끼 양의 울음 같은 울음소리와 새끼 비둘기의 구구거림 같은 웃음소리를 미리 듣습니다. 엘리사벳이 요셉 이야기를 꺼내자 마리아의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답은 같습니다. "그 저녁에 영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잠잠하여라. 너를 밝히는 일은 내게 맡겨라.' 하느님께서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으세요." 즈카르야에게조차 잠잠한 까닭도 밝힙니다. 천사가 그에게 드러내지 않은 것을 자기가 앞질러 드러낼 수 없다고요. 그 즈카르야가 밀랍 판에 씁니다. "나는 다시는 남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어. 하느님을 의심한 그때부터 나는 그럴 자격을 잃었어." 마리아의 대답은 짧습니다. "어르신, 기도하시게 될 거예요.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시니까요." 그리고 마리아가 "다윗 혈통의 임금에 앞서 가는 이에게 어울리는 배내옷"을 짓겠다고 하자 즈카르야가 묻습니다. 그분은 어디서 나실 것이냐고요. 마리아가 예언자들이 말한 그곳이라고 하자 노사제가 씁니다. "그러면 베들레헴에서로군!" 미카서 5장 1절,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성경으로 장소는 알아맞히면서도 눈앞의 신비는 모르는 사제, 그가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초대하고 마리아는 베틀 위로 고개를 숙이며 답합니다. "가겠어요." 받아쓰기에서 성모님께서는 이 석 달의 규칙을 첫 문장으로 주십니다. "첫째가는 사랑은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이다." 이웃 사랑 안에는 자기 사랑도 들어 있지만, 남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이라고요. 그리고 놀라운 셈법을 밝히십니다. "나는 물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갔는데, 하느님께서는 나의 그 올바른 뜻을 거룩하게 하시어, 그것으로 엘리사벳의 태 열매를 거룩하게 하셨다." 사람의 손길로 간 길에 하느님께서 세례자의 성화를 얹으신 것입니다. 엘리사벳에게는 신분을 부인하지 않으셨고 즈카르야에게는 신중하셨는데, 그 까닭이 이렇습니다. "내가 그분의 신부요 어머니였을지라도, 나는 언제나 여전히 그분의 여종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열쇠 문장입니다. "이기심은 서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늦추고, 사랑은 늦추는 것이 아니라 서두르게 한다." 루카 1장 39절이 왜 굳이 "서둘러"라고 썼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시간의 주인이시니 시간이 모자랄까 두려워하지 않으신다는 말씀도 덧붙이시지요. 가톨릭교회교리서 1822항은 애덕을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대신덕이라 정의하는데, 성모님께서는 그 정의에 순서를 매기신 셈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그리고 서둘러. 받아쓰기는 이름으로 맺힙니다. "내 이름은 마리아였다. 쓰라림을 품은 이름이다." 룻기에서 나오미가 남편과 아들들을 잃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셔요.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너무나 쓰라리게 하신 까닭이랍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그 쓰라림을 이렇게 뒤집으십니다. "맷돌에 갈리는 밀알처럼 으스러지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지! 우리의 고통으로, 약한 이들에게 힘을 주는 빵을 만드는 것은." 요한 복음 12장 24절의 밀알입니다. 이 그림을 목숨으로 산 사람이 서기 107년 무렵 로마로 압송되던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입니다. 그는 맹수에게 던져지기 전 로마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자신을 살려 달라고 애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입니다. 맹수들의 이빨에 갈려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되겠습니다." 성모님의 밀알과 순교자의 밀알이 같은 맷돌 위에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순서 바꾸기입니다. 오늘 내 일 하나를 뒤로 미루고, 가장 가까운 이웃의 필요 하나를 먼저 하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미루지 말고 서두르십시오. 서두름이 사랑의 표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서두르고, 이기심은 늦춥니다. 하느님께서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23장, 세례자 요한의 탄생, 모든 고통이 마리아의 품에서 가라앉는 밤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