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다; 성모님과 함께 가라] 나계시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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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다
성모님과 함께 가라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오르신 날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종려주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서른세 해 앞서, 어머니의 태중에서, 작은 회색 나귀 등에 실려서였습니다. 오늘은 짧은 환시, 길 위의 장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성경의 가장 큰길 위를 지나갑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19장으로 들어갑니다.
동틀 무렵입니다. 요셉이 회색 작은 나귀 두 마리를 끌고 마리아를 데리러 옵니다. 한 마리의 짐받이에는 요셉이 손수 만든 나무 궤가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마리아의 옷가지가 비에 젖지 않게 하려는 선물이지요. 마리아가 거듭 고마워하며 보따리의 짐을 그 궤에 옮겨 넣습니다. 궤를 모신 이가 궤를 싣고 떠나는 셈입니다. 나자렛은 아직 잠들어 있고 동쪽 하늘만 발그레합니다. 파스카를 앞둔 계절이니, 루카 복음 2장 41절이 전하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는 이 부부의 순례 가운데 첫 번째일 것입니다. 시편 122편이 그런 아침의 노래이지요.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 이 순례자는 주님의 집으로 가면서 주님을 모시고 갑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것은 가축 떼를 모는 목자 하나뿐입니다. 어린 양들이 걸으면서도 어미의 젖을 찾아 가늘고 날카롭게 울고, 어미들은 풀밭으로 걸음을 재촉하며 새끼들을 부릅니다. 마리아가 나귀 위에서 몸을 굽혀 곁을 스치는 양들을 어루만지는데, 갓 태어난 어린 양을 품에 안은 목자가 인사하러 다가옵니다. 마리아가 그 어린 양의 발그레한 코를 어루만지며 말합니다. "엄마를 찾는구나. 자, 여기 엄마가 있단다. 너를 두고 가지 않아, 안 가고말고, 아가야." 그러자 정말로 어미 양이 목자에게 몸을 비비며 일어서서 새끼의 코를 핥아 줍니다. 이 장면을 예언자가 이미 그려 두었습니다. 이사야서 40장 11절입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품에 안긴 새끼 양, 젖 먹이는 어미 양, 조심스럽게 이끄는 목자. 그런데 지금 이 길에서 진짜 어린양은 누구입니까. 요한 복음 1장 29절이 답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어린양이 지금 마리아의 태중에 있습니다. 어미 양을 조심스럽게 이끄는 목자는 요셉이고요. 그러니 "여기 엄마가 있단다. 너를 두고 가지 않아"라는 말은 한 마리 양에게 한 말이면서, 그 순간 어머니가 된 여인이 세상의 모든 어린 양에게 처음 건넨 말이기도 합니다.
이 길의 의미를 성경이 정해 줍니다. 사무엘기 하권 6장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유다 바알라에서 하느님의 궤를 모셔 오려고,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떠났다. 그 궤는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불렸다. 그들은 하느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내갔다." 계약의 궤가 유다 산지의 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그 여정입니다. 루카는 마리아의 길을 같은 방향으로 놓습니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다윗은 새 수레에 궤를 실었고 요셉은 회색 나귀에 마리아를 태웠지만, 실린 것은 이번이 더 큽니다. 16장에서 루카 1장 35절의 덮으신다는 동사가 성막을 덮은 구름의 동사임을 보았지요. 구름이 덮은 그 궤가 오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공식 독법이 그렇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676항은 성모송의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를 풀며 마리아를 시온의 딸 그 자체, 계약의 궤, 주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라 부르고, 주교회의 매일미사의 방문 축일 해설도 루카가 마리아를 커룹들이 감싸는 계약의 궤처럼 그린다고 설명합니다. 다윗과 궤의 이야기가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이야기와 세 겹으로 겹치는 것은 다음 장에서 보시게 됩니다. 오늘은 그 궤가 출발했다는 것만 기억해 두십시오.
들판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나란히, 말은 드물게 갑니다. 요셉은 제 일을, 마리아는 제 생각을 좇으며 그 생각을 향해 미소 짓다가, 이따금 요셉을 바라볼 때면 "서글픈 진지함의 너울"이 얼굴에 드리웁니다. 18장의 그 비밀입니다. 작은 숲 그늘에서 빵과 올리브를 먹고 동굴에서 흘러내리는 샘물을 마시는데, 시커먼 먹구름에서 사나운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두 사람은 바위의 불거진 자락 아래로 피합니다. 시편 121편이 순례자에게 약속한 그대로입니다.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너의 그늘 네 오른쪽에 계시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런데 그 바위 아래에서 요셉이 고집을 부립니다. 물이 배어들지 않는 제 양털 겉옷을 기어이 마리아에게 두르게 하고, 자기는 안장에 얹혀 있던 나귀의 덮개를 머리에 뒤집어씁니다. 두건 달린 밤색 겉옷에 온몸을 감싼 마리아는 "어린 수도자" 같아 보입니다. 이 겉옷을 성경으로 읽어 봅시다. 룻은 보아즈에게 청했습니다. "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 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 옷자락을 펼쳐 덮는 것은 보호의 몸짓이자 혼인의 언약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신 말씀도 그것이지요. 에제키엘서 16장 8절,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기억하십니까. 루카 1장 35절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마리아를 덮을 것이라 했습니다. 성령께서 덮으신 여인을 이제 요셉의 겉옷이 덮습니다. 13장에서 요셉을 신비 위의 인장이요 파수꾼이라 했는데, 오늘 그 파수꾼은 제 겉옷으로 궤를 덮고 자기는 나귀 덮개를 씁니다. 겸손의 파수꾼입니다.
그 겸손이 이 길 전체의 이름입니다. 즈카르야서 9장 9절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16장에서는 그 앞부분, 딸 시온에게 기뻐하라는 명령을 읽었지요. 뒷부분은 이렇습니다.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는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우리는 이 예언을 종려주일에 읽습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나귀를 타고 가시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어머니의 순종 위에, 회색 나귀의 종종걸음에 실려서. 겸손의 임금의 첫 행차는 서른세 해 뒤의 환호 없이, 잠든 나자렛을 빠져나가는 새벽에 이루어졌습니다. 소나기는 이슬비가 되고 이슬비는 해가 되어, 두 나귀가 한결 신나게 종종걸음을 놓습니다.
겉옷에 하느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길을 간 사람이 역사에 또 있습니다. 1531년 12월, 멕시코 테페약 언덕의 가난한 원주민 후안 디에고입니다. 성모님의 부탁으로 주교에게 표징을 가져가던 그는 겨울 언덕에 핀 장미를 제 겉옷, 틸마에 담아 도성으로 걸어갔고, 주교 앞에서 겉옷을 펼치자 장미가 쏟아지며 그 위에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과달루페의 그 성모상은 허리에 검은 띠를 두르고 계신데, 아즈텍 사람들에게 그 띠는 잉태한 여인의 표지였다고 전해집니다. 길을 가는 잉태한 어머니, 오늘 이 장의 마리아 그대로입니다.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 원주민을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요셉이 제 겉옷으로 궤를 덮었듯, 그는 제 겉옷에 어머니를 모시고 걸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길 위의 기도입니다. 집을 나설 때 시편 122편 1절을 한 줄 바치십시오. 주님의 집으로 가세. 그리고 오늘 누군가에게 겉옷 한 자락을 펼쳐 주십시오. 우산 한쪽, 자리 하나, 시간 한 토막이면 됩니다. 힘든 이가 있다면 그 어린 양에게 성모님의 말을 전해 주십시오. 여기 엄마가 있단다. 너를 두고 가지 않아.
기억하십시오. 궤가 길을 떠났습니다. 임금님께서는 겸손하시어 나귀를 타고, 어머니의 태중에서 예루살렘으로 오십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20장, 예루살렘을 떠나 유다 산지로 향하는 길, 마리아의 복된 모습과 두 부부에게 기도가 지니는 중요함을 함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