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장. 예수님께 오기 위한 유일한 준비물; 요한과 야고보가 메시아를 만난 일을 베드로에게 알리다. 하.사.시.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순전한 가톨릭(전삼용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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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예수님께 오기 위한 유일한 준비물; 요한과 야고보가 메시아를 만난 일을 베드로에게 알리다. 하.사.시.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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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요한과 야고보가 메시아를 만난 일을 베드로에게 알리다
예수님께 오려면 ‘이것’만 있으면 된다
두 어부가 라삐께 드릴 것이라고는 스무 데나리온뿐이라며 우기자,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 곧바로 가난한 이들에게 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스승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십니까?" 그때 답하신 한마디가 오늘의 핵심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그 영광을 섬기는 기쁨이 있다." 그분은 내 뜻대로 살기에 지친 사람을 부르시고, 당신 뜻에 제 평화와 기쁨을 둘 줄 아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마음을 오늘 "착한 뜻"이라 부르십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48장으로 들어갑니다.
시몬의 밤부터 봅니다. 새벽 호숫가에 요한이 달려 나와 돌아오는 배를 향해 "어이!" 외치고 옷을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들어가 맞는데, 배 위의 시몬은 부루퉁합니다. 짝 배 없이 밤새 혼자 그물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밤을 멀리서 보셨습니다. "그물을 던지고 있는데, 혼자 그물질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제 뜻대로 제 배를 부려 제 몫을 잡는 밤, 그 밤의 끝은 언제나 마음에 차지 않음입니다. 코헬렛이 그 밤을 평생 살아 보고 적었습니다. 코헬렛 2장 10절부터 11절입니다. "내 눈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 뿌리치지 않았고 내 마음에게 어떠한 즐거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내 손이 이룬 그 모든 위업과 일하면서 애쓴 노고를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보라, 이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일." 내 뜻대로 다 해 본 사람의 결산이 바람 잡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그랬습니다. 요한 복음 4장 13절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여섯째 남자와 살면서도 목말랐던 여인, 제 뜻이 고르고 또 골랐으나 채워지지 않은 우물입니다. 시편 63편 2절입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 내 뜻의 우물은 마르고, 그 마름이 부르심의 자리입니다.
다음은 시몬의 의심입니다. "누구든 그렇게 말할 수 있지. 하필 너와 야고보와 안드레아에게 나타나셨다고! 가엾은 무지렁이 셋에게!"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이들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11장 28절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밤새 혼자 그물질한 사람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입니다. 야고보가 스승의 말을 옮깁니다. "나는 이스라엘과 세상의 작은 이들에게, 우는 이들과 바라는 이들에게, 빛을 찾고 참된 만나에 굶주린 이들에게 다가간다. 진리와 평화를 바라는 이,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이는 나에게 오너라." 조건은 학식도 재물도 아니고 바라는 것 하나입니다.
다음은 그물의 물고기입니다. 예수님이 기슭으로 끌려오는 그물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입니다. "저 물고기 가운데 그 어느 것도 그물에 걸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도 마음먹고 마몬의 먹이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으리라. 다만 경솔함 탓에, 또 그들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그 무게 탓에 거기 빠지고 만다. 그 무게가 곧 아담의 죄다." 내 뜻이라 여긴 것이 실은 나를 조종하는 다른 뜻입니다. 38회차의 세 욕망, 곧 삼구의 뜻입니다. 요한 사도가 그 뜻의 끝을 적었습니다. 요한 1서 2장 17절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마태오 복음 6장 24절입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두 뜻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고, 예수님은 그 그물에 걸린 이들을 건질 다른 그물을 시몬에게 맡기려 하십니다. "그는 머잖아 다른 그물로만 고기를 잡고, 다른 것만 낚게 되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루카 복음 5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시몬을 두고 예수님이 품으신 뜻이 이것이었습니다. 시몬의 뜻은 고기였고 예수님의 뜻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음은 시몬의 결심입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곧바로 그분께 가야지." 거침없이 마음을 정하고, 그러다 멈추어 묻습니다. "다 아시고 다 들으신다고 했지." 밤의 불평까지 아셨다는 말에 무너집니다. "나는 그분께 갈 수 없다." 그러나 스승은 미리 이르셨습니다. "너희 말을 들을 그 사람이 결국엔 오게 될 것이니, 착한 뜻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착한 뜻, 이 말은 성탄 밤 천사들의 노래에서 왔습니다. 루카 복음 2장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라틴 말로 이 사람들이 착한 뜻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30회차의 목자들이 그들이었고 오늘 밤의 어부가 그들입니다. 착한 뜻이란 완성된 덕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관심을 두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그 조건을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요한 복음 7장 17절입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원하기만 하면, 이 가르침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원하기만 하면. 시몬은 거짓말쟁이라 여겼던 분께 갈 수 없다면서도 그 뜻을 원했고, 그래서 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스무 데나리온과 일곱 보물입니다. 라삐들에게 하는 관례대로 드린 돈을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다 주시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그 영광을 섬기는 기쁨이 있다"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우물가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요한 복음 4장 34절입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요한 복음 6장 38절입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내 뜻을 양식으로 삼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고, 아버지의 뜻을 양식으로 삼는 분은 스무 데나리온을 다 주고도 기쁘십니다. 그리고 무엇을 가져와야 하느냐는 물음에 "일곱 가지 이름을 지닌 보물"을 대십니다. "사랑, 믿음, 착한 뜻, 올바른 지향, 절제, 진실함, 희생의 정신." 이 일곱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의 일곱 이름입니다. 당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당신을 믿는 것, 당신 뜻에 관심을 두는 것, 그 뜻을 향해 지향을 바로 두는 것, 그 뜻을 위해 절제하고 진실하고 희생하는 것. 마태오 복음 7장 21절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44회차에서 어머니와 함께 바친 첫 주님의 기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가 이 일곱 보물의 다른 이름입니다. 어부에게도 있고 임금에게는 없을 수 있는 보물, "겨울 흙덩이 아래 씨앗처럼 잠들어 있으나 내 봄의 태양이 그것을 깨워 일곱 이삭으로 패어나게 하리라." 시몬이 말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모질지 않으시고 돈을 요구하지 않으시니,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시라 믿기에 넉넉하다." 요한 복음 1장 41절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내 뜻이 남긴 것은 바람이고 아버지의 뜻이 남긴 것은 기쁨입니다. 지식은 내 뜻을 채우는 법을 알고, 지혜는 하느님의 뜻에 제 기쁨을 둡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그 영광을 섬기는 기쁨이 있다." "나를 따르는 이에게 나는 이것을 바라니, 오직 이것뿐이며, 너희 안에 그것이 있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822항은 아버지의 뜻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진리를 깨닫는 것이며 그 뜻의 계명이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하고, 2824항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인간적 의지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졌으며 그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나이다" 하신 그 뜻에 우리를 결합시키신다고 가르칩니다. 착한 뜻은 그 결합의 첫걸음입니다.
1574년 나폴리, 스물네 살의 군인 카밀로 데 렐리스가 노름에 빠져 가진 것을 다 잃고 마지막에는 입고 있던 셔츠까지 걸었다 잃었습니다. 제 뜻대로 살아 제 뜻이 남긴 것이 빈 몸이었습니다. 이듬해 카푸친 수도원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며 한 수도자의 말을 듣고 길 위에서 무릎을 꿇었고, 그 뒤 로마의 병원에서 죽어 가는 이들을 돌보며 병자를 섬기는 수도회를 세웠습니다. 노름판의 뜻이 남긴 것은 셔츠 한 장이었고, 하느님의 뜻이 남긴 것은 오늘도 세계의 병원에서 붉은 십자가를 단 카밀로회입니다.
오늘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일 하나를 골라 그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 뜻대로 살기에 지쳤습니다. 이 일에서 당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 물음이 착한 뜻이고,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뜻의 우물은 다시 목마르고 아버지의 뜻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내 뜻대로 살기에 지친 사람을 부르시고, 하느님의 뜻에 관심을 두는 착한 뜻만 있으면 누구나 그분께 갈 수 있습니다.
다음 회차 제49장 '회당에서 말씀하신 뒤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만나시다'에서는 성경이 안드레아라 적은 그 첫 제자의 자리를 요한이 왜 제 복음서에서 그에게 넘겼는지, 예수님이 밝히시는 요한의 겸손을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