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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장. 광야에서 사탄에게 유혹받으신 예수님; 침묵과 기도. 나.계.복.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순전한 가톨릭(전삼용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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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장. 광야에서 사탄에게 유혹받으신 예수님; 침묵과 기도. 나.계.복.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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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장. 광야에서 사탄에게 유혹받으신 예수님. 유혹을 이기는 길 생각과의 싸움; 성령의 칼인 말씀으로 – 침묵과 기도 하와는 뱀과 대화했습니다. 대화하는 동안 하느님의 말씀이 조금씩 비틀렸고, 열매가 먹음직해 보였고,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졌습니다. 이천 년 뒤 광야에서 같은 뱀이 새 아담에게 왔습니다. 여자와 빵과 성전 꼭대기와 온 땅을 들고. 예수님은 대화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십 일을 굶으신 몸과 기도로 가득 찬 마음으로 "적혀 있다"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도 뱀과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돈과 여자와 힘을 탐하는 자아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알려 주신 두 무기, 단식과 기도를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46장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장 전체입니다. 요르단의 초록이 보이지 않는 유다 광야 깊숙한 곳, 거대한 바윗덩이의 우묵한 그늘에 예수님이 돌 위에 앉아 계십니다. 어머니가 싸 주신 자루는 빈 채 접혀 있고 그분은 무척 야위고 창백하십니다. 사탄이 뿔도 꼬리도 없이 터번 자락으로 낯을 가린 베두인의 모습으로 와서 묻습니다. "혼자시오? 길을 잃었소?" 예수님은 잠잠히 기도하십니다. 그가 정체를 밝힙니다. "나는 땅의 지혜요. 이기는 법을 가르쳐 줄 스승이 되어 줄 수 있소." 여자부터 시작하라 하다가 돌을 빵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천사의 날개로, 한순간의 흠숭으로 온 땅을 내밉니다. 예수님은 세 번 "적혀 있다"로만 답하시고 마지막에 일어나 "물러가라, 사탄아" 하십니다. 사탄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고 천사들이 서늘한 바람으로 그분을 되살립니다. 이어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사탄이 영혼에 다다르려 가장 흔히 쓰는 두 길은 색욕과 탐식이다. 언제나 물질의 부분에서 시작한다." 이기는 길은 침묵과 기도라고. "사탄과 따지는 것은 헛되다. 그가 이길 것이니, 그 말재간이 세기 때문이다." 핵심은 하나입니다. 유혹은 몸의 욕망에서 시작해 생각으로 자라므로, 몸은 단식으로 절제하고 생각은 말씀으로 끊어야 합니다. 육을 절제하면 성령이 오시고, 성령과 말씀이 만나는 시간이 기도이며, 기도가 아니면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빈 자루부터 봅니다. 사십 일 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습니다. 유혹이 몸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물질의 부분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허물어 굴복시키고 나면 더 높은 부분을 친다" 하십니다. 그래서 몸을 먼저 다스리셨습니다. 루카 복음 4장 1절부터 2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성령으로 가득 차 들어가 단식하시고, 루카 4장 14절대로 "성령의 힘을 지니고" 나오셨습니다. 육을 비우면 성령이 채웁니다. 갈라티아서 5장 16절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뒷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 원리입니다. 마태오 복음 17장 21절입니다. "그런 것은 기도와 단식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 다음은 베두인의 대화입니다. "혼자시오? 길을 잃었소?" 뱀은 언제나 대화로 시작합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느님은 이렇게만 명하셨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런데 뱀과 말을 섞은 하와는 이렇게 옮깁니다. 창세기 3장 3절입니다.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지지도 마라, 하느님이 하지 않으신 말이 붙었습니다. 대화 몇 마디에 말씀이 비틀렸고, 비틀린 말씀은 지킬 힘을 잃습니다. 그다음이 창세기 3장 6절입니다.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가지고 싶고, 먹고 싶고, 하느님처럼 눈이 밝아지고 싶은 세 욕망이 대화 속에서 자랐습니다. 야고보가 그 자라는 순서를 적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부터 15절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잉태되어 자라는 것, 그것이 생각입니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욕망은 커지고, 결국 채워서 죄를 짓거나 채우지 못해 마음이 짓눌립니다. 잠언 12장 25절입니다. "마음속의 근심은 사람을 짓누르지만 좋은 말 한마디가 그를 기쁘게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대화하지 않는 것이 첫째 무기입니다. 다음은 "여자부터 시작하시오"와 "나는 땅의 지혜요"입니다. 사탄은 여자와 황금과 권세를 차례로 내밉니다.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복음 강론에서 이 셋을 에덴의 셋과 맞대었습니다. 배로 유혹하여 열매를 먹게 하고, 야망으로 유혹하여 하느님처럼 되리라 하고, 탐욕으로 유혹하여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 한 그 뱀이, 둘째 아담에게도 빵과 성전 꼭대기와 온 나라로 왔다고. 훗날 베드로가 수난을 말리자 예수님은 광야에서 하신 말을 그대로 하십니다. 마르코 복음 8장 33절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베드로 안의 생각, 곧 자아를 사탄이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돈과 여자와 힘을 탐하는 자아가 있고, 그 자아가 뱀의 말을 안에서 되풀이합니다. 다음은 세 번의 "적혀 있다"입니다. 마태오 복음 4장 4절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오 복음 4장 7절입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마태오 복음 4장 10절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예수님은 당신 생각으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꺼내십니다. 말씀이 생각을 끊는 칼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코린토 2서 10장 5절입니다. "모든 생각을 포로로 잡아 그리스도께 순종시킵니다." 바오로는 그 칼과 기도를 한 문장에 묶었습니다. 에페소서 6장 17절부터 18절입니다.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말씀과 성령이 만나는 시간, 그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사탄에게 그 이름과 그 표징을 보여라. 종이에 적히거나 나무에 새겨진 것이라기보다, 마음에 적히고 새겨진 것으로 말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제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 그것이 기도이고, 마음에 새겨진 말씀만이 유혹의 순간에 꺼내집니다. 마지막은 천사들과 빈 자루입니다. 사탄이 사라지자 천사들이 서늘한 바람으로 예수님을 되살립니다. 육을 굶긴 자리에 하늘이 채워 줍니다. 로마서 8장 13절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그리고 겟세마니에서 제자들에게 같은 무기를 건네십니다. 마태오 복음 26장 41절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몸이 따르지 못하니 단식이고, 마음이 간절하니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너는 보았다. 침묵과 기도다." "사탄이 저도 하느님과 같다고 꾈 때에는, 오직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맞받아라. 그는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539항입니다. "첫 아담은 유혹에 넘어졌으나, 예수님께서는 꿋꿋하게 서 계시는 새 아담이시다." 2849항은 유혹과의 싸움과 승리가 오직 기도 안에서만 가능하며 예수님이 공생활의 처음과 고뇌의 마지막 싸움에서 기도로 유혹자를 이기셨다고 하고, 1434항은 그리스도인의 회개가 단식과 기도와 자선으로 드러난다고 가르칩니다. 3세기 이집트의 안토니오는 해가 진 뒤 하루 한 번 빵과 소금만 먹으며 무덤 굴과 버려진 요새에서 스무 해를 살았습니다. 아타나시오는 그가 마귀와 싸운 자리가 몸이 아니라 생각이었다고 적습니다. 마귀는 여자의 모습으로, 길 위의 은 쟁반과 황금으로, 짐승 떼의 환영으로 그의 생각을 흔들었고, 안토니오는 어느 것과도 따지지 않고 성경 구절을 외며 십자 표징을 그었습니다. 뒷날 사막의 교부들은 이 싸움을 생각과의 싸움이라 불렀습니다. 광야의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입니다. 오늘 두 가지를 하십시오. 한 끼를 줄이거나 한 가지 즐거움을 끊어 몸을 다스리고, 유혹의 생각이 문을 두드리는 순간 따지지 말고 성경 한 구절을 소리 내어 말하십시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기억하십시오. 뱀과의 대화는 생각이고 생각은 욕망을 키웁니다. 몸은 단식으로 절제하고 생각은 말씀으로 끊으십시오. 육을 비우면 성령이 오시고, 성령과 말씀이 만나는 기도가 아니면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음 회차 제47장 '요한과 야고보를 만나시다'에서는 광야에서 돌아오신 예수님이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자의 두 제자를 처음 만나시고,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이 왜 제자들 가운데 순결한 이로 불리는지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