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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지혜의 가르침으로 에덴의 수호자가 된 요셉과 동정녀의 혼인] 나.계.시.와 함께 하는 성경 공부

순전한 가톨릭(Mere Cathol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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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지혜의 가르침으로 에덴의 수호자가 된 요셉과 동정녀의 혼인] 나.계.시.와 함께 하는 성경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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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지혜의 가르침으로 신비의 수호자가 된 요셉과 동정녀의 혼인 새 에덴의 파수꾼 성경은 요셉의 말을 단 한마디도 전하지 않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뒤져도 이 사람의 대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침묵의 성인이 입을 열어 아가서를 노래합니다. 혼인날의 신랑 요셉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13장으로 들어갑니다. 하누카의 정혼에서 두어 달, 이제 봄의 첫 햇살이 들판을 깨우는 계절입니다. 성전 여인들의 처소에서 신부가 단장을 마쳤습니다. 비단처럼 고운 새하얀 아마포 옷, 가느다란 허리에는 너무 커서 장식판 세 개가 앞으로 늘어지는 은과 금의 오래된 허리띠, 손을 흔들면 흘러내릴 듯한 헐거운 팔찌. 동무들이 참새 떼처럼 재잘거리며 그 팔찌를 들여다보니 솔로몬의 인장과 종려나무와 올리브 가지, 백합과 장미가 새겨져 있습니다. 다윗 가문의 신부들이 수 세기 동안 물려 두른 패물로, 상속녀 딸에게 내려온 것입니다. 지난 시간 민수기의 상속 딸 법리가 패물에까지 새겨져 있는 셈이지요. 그리고 처음으로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올렸습니다. 소녀가 여인이 되었다는 표지입니다. 책은 그 얼굴을 이렇게 적습니다. "지극히 순결한 제병 같은 얼굴." 세상에 빵을 주실 분을 모실 얼굴을, 발토르타는 저도 모르게 성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예복의 출처가 오늘의 첫 눈물입니다. 엘리사벳이 전합니다. 마리아가 성전에 오던 그날 안나가 이미 혼인 예복과 혼수를 다 지어 두었다고, "아마포를 잣고 혼인 예복을 지어 주는 사람은 언제나 나이고 싶었으니까"라고요. 8장에서 안나가 소원하던 그대로입니다. 차고 굳은 손일지라도 제 어미의 손으로 지은 예복으로 딸을 단장시켜 달라던 그 기도가 오늘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안나의 마지막 나날을 들려줍니다. 저녁마다 이 옷들을 어루만지며 입을 맞추었다고, "네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는 이 너울에 얼마나 많은 입맞춤을 했는지! 올이 많은 것보다 입맞춤이 더 많았단다!" 그러니 이 너울은 씨실보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짜인 천입니다. 엘리사벳이 맺습니다. "기뻐하렴, 마리아. 너는 고아가 아니야." 마리아도 신랑 자랑으로 화답합니다. 두 달도 안 되어 세 번째, 오늘은 비바람을 무릅쓰고 "제게서 분부를 받으려" 오신다고요. 분부라니요, 하고 소녀는 얼굴을 붉힙니다. 요셉은 제가 말하기도 전에 제 바람을 알아차리신다고, 마치 천사가 일러 주기라도 하는 듯하다고요. 실제로 요셉은 신랑의 자존심을 접고 신부의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먼저 말했습니다. 상속녀인 그대가 추억이 깃든 아버지의 집에 살기를 바랄 테니 내가 그대의 집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예법을 위해 혼인 전 한 주간은 형 알패오의 집에, 이미 마리아를 아끼는 형수 마리아 곁에 머물게 하지요. 그때 그 "거룩한 젊은이"가 들어옵니다. 온통 금빛 차림에 은매화 다발을 든 요셉, 동방의 군주 같습니다. 그리고 꽃의 사연을 들려줍니다. 그대의 동굴 곁에서 꺾은 은매화라고, 본디는 그대 집 앞에 첫 봉오리를 내민 장미를 가져오고 싶었으나 먼 길에 시들 것이기에, 안장에 물병을 매달고 봉오리 가지를 꽂아 왔더니 오는 길에 꽃이 피었다고요. "나는 그대에게, 사랑하는 이여, 오직 장미만을 바치고 싶소." 은매화가 어떤 나무인지 이사야서 55장 13절이 말해 줍니다. "가시덤불 대신 방백나무가 올라오고 쐐기풀 대신 도금양나무가 올라오리라." 도금양이 곧 은매화입니다. 가시의 자리에 은매화가 돋는 것은 낙원 회복의 표징이라는 것이지요. 신부의 화관이 그 나무로 엮입니다. 이어 요셉은 서원을 한 단계 올립니다. 되풀이하는 한시적 나지르 서원으로는 부족하다고, "당신의 발치에 내 보물을 바치오. 영원토록. 곧 내 온전한 정결이오." 그리고 침묵의 성인이 아가서를 노래합니다. "우리 조상 솔로몬이 아가서에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잠긴 정원이요 봉인된 샘이여'라고 노래했는데, 그분은 어쩌면 당신을 보며 그 아가를 지으셨는지도 모르오. 나는 이 향기로운 정원의 지킴이가 되겠소." 11장에서 어린 마리아를 부르던 그 목소리의 호칭을, 이제 지상의 신랑이 이어받아 부르는 것입니다. 예식은 장엄하고 짧습니다. 회당 같은 방, 높은 독경대 앞에서 대사제가 신부의 오른손을 신랑의 오른손에 얹고 강복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기를. 그분께서 너희에게 긴 생명과 함께 많은 후손을 주시기를." 동정을 서원한 두 사람에게 많은 후손이라니, 헛나간 축복일까요. 요한 복음 19장 26절과 27절을 보십시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며 사랑하시는 제자를, 그리고 그 제자 안에서 모든 믿는 이를 이 부부의 자녀로 넘겨주셨습니다. 축복은 빗나간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커진 것입니다. 혼인 계약서에는 상속녀 마리아가 집과 재산을 지참금으로 가져온다고 적히고, 수레는 봄 들판을 달리며, 신부는 너울 아래로 나직이 울며 멀어지는 성전을 돌아봅니다. 받아쓰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지혜서 7장을 펴십니다. 27절입니다. "지혜는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3장에서 요아킴 부부를 설명하던 그 구절이 이제 요셉에게 적용됩니다. 글도 모르는 가련한 일꾼이라 자신을 낮추는 이 목수가, 인간의 학식이 아니라 지혜의 가르침으로 "티 없는 동정녀의 봉인된 책"을 읽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아쓰기는 창세기를 세 겹으로 뒤집습니다. 첫째, 마리아는 새 하와이지만 아담의 외침과 반대입니다. "그의 뼈에서 나온 뼈도 그의 살에서 나온 살도 아니지만" 참된 삶의 반려라고요. 둘째, 마리아는 새 에덴입니다. 영원하신 분께서 그 안에서 "저녁 산들바람 속을 거니시며" 즐거움을 누리신다는데, 창세기 3장 8절에서 죄지은 인류가 숨어 버렸던 바로 그 동산 산책이 이 영혼 안에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셋째, 그렇다면 요셉은 누구입니까. 받아쓰기는 그를 "천국 문지방을 지키는 불의 대천사"라 부릅니다. 창세기 3장 24절에서 불 칼을 들고 에덴을 막아섰던 커룹의 자리에, 이번에는 낙원을 지키려고 파수꾼이 서는 것입니다. 11장의 세 번째 커룹 마리아 곁에, 네 번째 파수꾼 요셉이 서는 셈이지요. 마리아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궤"이고, 요셉의 예형은 레위기 16장이 그립니다. 대사제만이 아마포 옷을 입고 휘장 안 속죄판 앞에 들어가듯, 요셉은 정결이라는 아마포를 입고 하느님의 영이 감도는 살아 있는 궤의 집으로 날마다 들어가 어린양을 모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자렛의 집이 지성소요, 목수가 그 대사제인 셈입니다. 받아쓰기의 절정은 이 선언입니다. "요셉이 골고타에 없었더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공동 속량자들 가운데 첫째였으며, 메시아의 기적을 보지도 않고 믿은 이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이 어디 있느냐?" 기적 한 번 못 보고 눈감은 사람, 요한 복음 20장 29절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의 첫 주인공입니다. 교리서 721항은 마리아를 성부께서 이룩하신 최고의 걸작이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그 걸작의 첫 독자요 수호자입니다. 교회도 그렇게 고백해 왔습니다. 1889년 레오 13세 교황은 그를 모든 가장의 모범으로 세웠고, 꼭 백 년 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서의 제목을 아예 「구세주의 수호자」라 붙였습니다. 오늘 장의 제목 그대로이지요. 이 나자렛의 침묵을 문자 그대로 산 사람이 성 샤를 드 푸코입니다. 프랑스 귀족 장교로 방탕하게 살다 회심한 그는 제 소명을 "나자렛의 삶"이라 불렀고, 실제로 나자렛의 글라라 수녀원에 정원사이자 심부름꾼으로 숨어들어 삼 년을 살았습니다. 1장의 글라라 성녀의 딸들 곁에서 말입니다. 이후 사하라 사막 깊이 들어가 개종자 한 명 없이 침묵과 흠숭으로 살다가 1916년 강도들의 손에 살해되었는데, 실패처럼 보인 그 삶의 씨앗에서 여러 수도 가족이 태어났고 2022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요셉처럼, 열매를 보지 않고 믿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요셉의 방식입니다. 내가 지키는 사람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말없이 한 가지를 해 보십시오. 밭을 미리 갈아 두는 일, 길에 장미를 뿌려 두는 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을 잠긴 정원으로 지켜 달라고 청하십시오. 성 요셉이여, 우리 집의 파수꾼이 되어 주소서. 기억하십시오. 침묵의 성인은 봉인된 책의 첫 독자였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14장, 신랑 신부가 나자렛에 도착하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