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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6 / 에스겔 39장 23, 24, 29절 / 얼굴을 가리신 이유?

파리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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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6 / 에스겔 39장 23, 24, 29절 / 얼굴을 가리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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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6일 파리세움교회 주일 설교영상입니다. 많은 은혜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내 얼굴을 가리신다”(23, 24절)는 표현 앞에 멈추었다. 익숙한 말씀이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뜻을 설명하려 하니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신다는 것은 은혜와 평강, 호의와 보호를 베푸신다는 언약적 표현이다. 그렇기에 얼굴을 가리신다는 표현은 언약을 폐기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죄를 징계하시기 위해 그들이 누리던 언약적 호의와 보호를 잠시 유보하셨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죄 때문에 원수의 손에 넘어가고 포로가 되었다. 목사인 나 역시 죄를 범했을 때 어려움이 찾아오면 단순하게 생각하곤 한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정죄하시는 것은 아닐까?” 죄를 두려워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징계와 정죄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지만, 다시 회복된 이유는 그들이 훌륭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포로기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완고하고 교만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돌아오게 하며”(25절). 회복의 근거는 이스라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었다. 존 오웬(John Owen)은 구름이 태양을 가려도 “태양은 여전히 있던 곳에 있다”고 말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감추실 때에도 “그는 여전히 아버지”라고 했다. 얼굴이 가려져도 언약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29절의 말씀이 더욱 깊이 다가온다.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그리고 신약에서 바울은 선언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또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징계는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는 없고, 그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묻는다. 나는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순간, 나의 죄와 형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의 죄와 형편을 바라보는가? 얼굴은 가려질 수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 감정과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붙들고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자. 할렐루야!